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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역사 문화(2)-독일 역사와 문화는?

왜 독일 역사와 문화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가?

외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고, 지금은 코로나로 잠잠하지만 외국을 여행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때문이다. 또한 바쁜 일상생활에서도 외국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내면의 여유와 풍요를 찾으려는 이들도 있다. 이를 반영하듯 서점에는 외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이 다양해지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외국을 여행하거나, 외국에서 몇 년을 살게 된다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면 좋다. 역사와 문화를 이해한다면 삶이 달라질 수 있고, 알면 알수록 재미도 있다. 사람을 만나도 즐겁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유럽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큰 편이다. 독일은 유럽의 중심에 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나 영국의 역사문화와는 달리 독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독일 역사와 문화가 어려운 이유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독일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프랑크푸르트나 함부르크에 비해 400여 년 뒤늦게 역사에 등장했으며, 베를린이 독일 역사의 중심에 섰던 기간도 짧기 때문이다.      


독일 역사에서 가장 오래 존재했던 신성로마제국(962〜1806년)은 왕국, 선제후 국, 공국, 주교 국 등 350여 개의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오늘날과 같은 고정된 수도가 없었으며 황제가 체류하고 있는 곳이 수도였다. 프랑크푸르트, 뉘른베르크, 뮌헨, 보름스, 레겐스부르크와 합스부르크가의 본거지였던 빈 등이 중심지였다. 변방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은 1701년 프로이센 왕국이 수립되면서 역사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즉위식이 열렸던 프랑크푸르트 카이저 대성당 내부(사진 :  C. 손선홍)


1871년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며 수립한 독일 제국도 4개 왕국, 18개 공국과 3개의 자유시로 나뉘어 있었다. 구성원이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독자적인 행정권을 행사한 연방제 형태였다. 이는 독일이 2천 년 가까이 지역마다 각자의 역사를 형성해 오면서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독일이 연방제를 해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 동상(함부르크 소재)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전한 후 등장한 바이마르 공화국도 베를린 아닌 인구 10만 명도 안 되는 바이마르에서 출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분단됬고,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의 수도는 본이었다. 이렇게 독일 역사의 중심에 섰던 도시가 다양하다.     


내가 만난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의 독일 역사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이어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했습니다. 그런데도 독일 역사보다도 프랑스 역사를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독일 역사를 연구한 독일인조차도 프랑스 역사를 이해하기가 더 쉽다고 하니 독일 역사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독일의 역사와 문화는 수도인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뮌헨, 함부르크 등 한 두 도시만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프랑크푸르트, 뮌헨, 뉘른베르크, 함부르크, 보름스, 뤼베크, 마인츠, 베를린, 드레스덴, 본 등 여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두루 이해하여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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