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기나긴 우기가 시작되었다는 걸 몰랐다. 소나기가 내리는 게 아니라는 걸, 보름 남짓 지나면 물러갈 장맛비가 아니라는 걸, 그때는 몰랐던 거다. 그때? 우기가 언제 시작되었던가. 우기의 시점이 있었던가. 실은, 어느 순간 우기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 내내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자문하다가, 언뜻, 내리쬐던 햇살과, 햇살 사이로 넘실거리던 바람과, 바람을 따라 콧잔등을 스치던 풀냄새가 생각나는 거였다. 비에 젖은 냄새, 그러니까 그건, 우기에도 찾아드는, 비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비에 젖은 햇살내음, 비에 젖은 바람내음, 비에 젖은 풀내음, 비에 젖은 흙내음…. 마른땅에서는 맡을 수 없는, 더욱 강렬한 생의 내음, 거기서, 가끔은, 물비린내가 났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서, 인간은 화성에서도 물을 찾고, 수억 광년 너머 어둠 속에서도 물을 찾는다는데, 내내 우기인 생에서는 왜 생이 싹트지 않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생은 싹트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그러니 나는 존재했고, 화성은 존재했고, 별은 존재했다. 우기가 끝나면, 누군가는 생의 화석을 찾아다닐 테지만, 더 이상, 비에 젖은 냄새는 맡지 못할 것이다. 생의 물비린내는 맡지 못할 것이다.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다. 우기가 시작된 이후, 오랫동안, 그의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목소리로 들어도 좋았고, 양희은의 목소리로 들어도 좋았다. 아니, 그의 목소리로 들어도 쓸쓸했고, 양희은의 목소리로 들어도 쓸쓸했다. 생의 물비린내가 나는 노래, 마른땅에서는 맡을 수 없는, 비에 젖은 냄새가 나는 노래. 하나둘 떠나가는 존재들과 함께, 생이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