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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구오 Jan 23. 2023

내 꿈은 너야, 섭배야

부단히 나를 드러냈던 날들

 어디까지 보여줘야 네가 나를 믿게 될까? 나는 늘 가장 최악의 나를 꺼내놓았다. 그게 반대로 나를 포장하는 완벽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나는 가끔 그녀의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고등학생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 한 명이 문득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네가 정말 부러웠는데…. 말은 안해서 그렇지 그럴 때가 많아.”


       무슨 맥락에서 그녀가 그런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은 안난다. 하지만 추측해보자면 아마 그 날도 나는 자조적인 한탄을 내뱉고 있었을 것이다. 18살의 나는 늘 그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부럽고, 왜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나 생각하면서도, 딱히 변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모순 그 자체다. 나는 어쩔 때 나를 가장 아껴주면서도, 어쩔 때는 나를 미워하고 저주한다. 그래서 누가 나한테 무언가를 지적해도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왜냐면 내 의견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함), 내가 나한테 의문이 들면 한없이 무너진다.


       이 특성이 내면에서만 발현된다면, 살아가는데 별 문제 없었을 거다. 근데 문제는 그 때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늘 나에 대한 불만을 다른 사람들한테 털어놓았다. 사실 그렇게 해야, 내 가장 낮은 모습을 보여줘야 오히려 그들이 나를 무시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애들아,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그니까 나한테 기대하지마- 대충 이런 식의 마인드였을 거라 추측해본다. 그럼 내가 나의 가장 최악의 순간을 보여주게 되더라도 내게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읽었던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글 중에는 ‘약점을 드러내지 마라’는 문구가 꼭 하나씩은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만 보고 당신의 전부를 평가할 것이라고, 그것을 공격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게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변하지 못했다. 누가 나를 싫어하는 게 무서웠다. 내 자기 방어 방식은 자기혐오였기 때문이다.


       위의 그 한마디를 들었던 날도 그런 날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나를 깎아내리고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철 없는 발언을 했을 거다. 아마도 그녀는 그런 나를 달래려고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녀는 낙천적이고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나는 한번도 그녀 또한 어두운 면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좀만 생각해봐도 당연한 건데, 그건. 누구에게나 잠들 수 없는 새벽이 있고,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다. 장점밖에 찾을 수 없던 그녀가 저런 말을 했다. 나를? 왜? 난 소심하고 재능도 없는 바본데.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당연히 몰랐다. 시간이 흐르고, 내 스스로가 진심으로 못 미더운 순간마다 저 말이 생각날 줄은. 그녀는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기억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진심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내가 미울 때,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할 지도 모른다고. 내가 내 별로인 부분들을 꺼내 진열해둔다고 모두가 나를 낮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내가 그녀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이제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어차피 죽는 그 순간까지 내가 나라면, 나라도 나를 이해해줘도 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이 그저 그런 인생을 살게 될텐데, 그게 뭐 별 건가.


       나이를 먹었다고 내가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다. 특별할 거 없는 인간이라는 건 사실이니까. 깨달음을 얻고 나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대신 이제 나는 나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딱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줄 알게 됐다. 무난한 아이템도 가끔은 호불호가 갈리듯,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재밌다. 얘는 별 볼 일 없어요, 근데 그게 약점도 컴플렉스도 아니래요. 그래서 더이상 그 사실들을 드러낼 필요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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