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시즌 3로 마무리한 <오징어 게임>은 내게 큰 실망을 안겼다. 사실 시즌 2에도 별점 1개를 매길 정도로 불호였으나, 다음 시리즈에서 어느 정도 개선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드라마의 퀄리티보다 아쉬운 점은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전세계 동시 공개 작품이자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는 점. 타 국의 문화 수준을 가장 손쉽게 알 수 있는 건 그 국가의 문화 콘텐츠다. 문화적 특징도, 매력도, 능력치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시리즈가 한국을 대표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지 않은가. 다만 동시기에 재밌는 작품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소니에서 제작하고 넷플릭스로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감상했다.
미국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늘 한국을 배경으로 한 미국 애니메이션을 기대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는 아니었으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독특한 방식으로 한국을 다루는 애니메이션 영화다. K-POP과 팬 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흥미 요소로써 활용한다. 케이팝이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점도 흥미롭지만, 이 요소들이 플롯에 대체 불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눈에 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퇴마’나 ‘저승사자’ 같은 전통 요소가 핵심이고, 한국식 로맨스 요소가 개입한다는 점이나, 사이드 킥으로 호랑이 캐릭터를 활용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단순한 문화 차용에 그치지 않고 한국 문화만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호평 일색이지만, 나는 러닝 타임 초반부터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2022년에 공개된 픽사 작품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 떠오른다는 점이다. 몇몇 장난스러운 연출은 장르적 유사성이라 보더라도, 아시안 팝과 팬 문화, 5인조 보이 그룹 등의 설정이 상당히 유사했다. 특히 해당 작품은 작중 아이돌의 히트곡을 제작하기 위해 빌리 아일리시, 피니어스 남매를 기용하기까지 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여러 케이팝-라이크 곡들이 등장하고, THEBLACKLABEL의 히트 메이커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사실 ‘아시안 문화로 영화를 만드는데 소스가 팬 컬처 밖에 없나’ 싶은 게 가장 아쉬운 점이다. 사실상 내세울 한국 문화는 그게 다인 거 같기도 한데, 그마저도 한국만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메이의 새빨간 비밀>로 보여진다.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라는 걸출한 명작을 뽑아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기술적으로는 이미 업계 최고 수준에 가까웠다. 그러나 독특한 연출 방식을 제안한 제작사임에도, 소니 애니메이션 회사 자체가 독보적인가 묻는다면 의문을 가질 법 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현대적인 분위기는 잘 담아내는 것을 증명했지만, 스토리 면에서 미완성 같은 느낌이 컸다. 또한 전반적으로 유치한 흐름을 떨쳐내는 것에 실패했다. 그러나 완성도를 떠나, 한국을 배경으로 한 북미 장편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단편으로는 픽사 스파크쇼츠 <윈드>가 있다. 이쪽도 상당한 수작이다. 말 그대로 떡 하나 더 주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