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15분이 넘어가는데도 오지 않는다.
“전화 한번 해봐야 하는 거 아냐?”
옆 팀의 실장 하나가 뒤통수에 대고 묻는다. 나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라서 알겠다고 하고 문자를 보낸다.
「추운데 잘 찾아오고 계신가요?」
「혹시 오늘 면접 약속을 잊으신 건 아니죠? 」
5분 간격으로 보낸 두 통의 문자에도 답이 없다.
자기 방에 있던 실장이 다시 나와 말한다.
“7시 약속 맞는 거지? 30분까지만 기다려보고 안 오면 우리도 그냥 퇴근하자.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그러게.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뭔가 있겠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나는 괜히 부탁하는 목소리가 돼서 성미 급한 실장에게 사정한다. 어쨌든 약속을 잡은 건 나니까.
모니터 오른쪽 모서리에 오후 7:30이라는 숫자가 찍힌다.
이제는 내가 더 약이 올라서 전화를 건다. 걸고, 걸고, 또 걸고.
‘약속 시간이 30분이나 지났는데 문자도 확인 안 하고, 전화도 안 받는다고? 이건 아니지 않아?’
약속시간을 45분이나 넘기고서야 응시자한테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퇴근시간이 다 돼서 예상치 못한 광고주 미팅이 잡혔는데 저 혼자만 먼저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러 분이 기다리고 계셨을 텐데 미리 연락 못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갑작스런 광고주 미팅이라… 우리 같은 일을 하는 회사에서는 심심치 않게 생기는 일이니까 아주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정작 화가 나는 포인트는 다른 데 있다.
‘죄송하다’가 끝이라고? 우리 회사에 꼭 입사하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쳐서 속상하다, 면접 약속을 다시 잡을 수 있겠냐 사정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쨌든 응시자가 못 오게 됐다는 소식을 알리자 실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진짜 미친 거 아냐? 나도 뽑을 생각 별로 없었어. 자세히 읽어보니까 포폴(포트폴리오)도 별로고 희망연봉도 겁나 쌔. 그리고 일단 약속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안 되겠잖어”
그래, 이 반응 역시 이해 못할 건 아니다. 나나 또 다른 실장이야 퇴근시간을 조금 넘겼다 뿐이지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기다렸지만 그는 달랐다. 오후 늦게 여의도에서 있었던 미팅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퇴근할 수 도 있었지만 면접 약속 때문에 꽉 막힌 퇴근시간 정체를 뚫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나는 이 사람, 꽤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부득이한 일이 생겼다는데 사람을 뭐 그렇게까지 나쁘게 말하냐?’
그래서 나는 이 말을 하지 못했다.
자리로 돌아와 침착하고 냉정하게 면접 약속을 잡은 사람으로서 답장을 준비했다.
「네.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참 실망스럽네요.
지금 다니시는 곳에서 회사생활 잘 하시길 바랍니다.」
상대의 잘못을 간과하지 않는 문장과 이직에 진심이 아니었음을 꼬집는 말에서 교묘하게 비아냥거리는 느낌이 난다.
그 사이 실장한테서 카톡이 온다.
“혹시 그 친구한테 답장 보냈어? 아직 안 보냈으면 이렇게 보내줘. 도저히 못 참겠어.”
「아무리 광고주 미팅이라도 전화 한통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요? 오늘 일은 너무 예의가 아닌 것 같네요. 면접관 3명이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이렇게 일방적인 상황은 처음이라 당황스럽습니다.」
내가 적은 문장과 실장이 적은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모양만 다른 그릇일뿐 떫고 쓴 음식이 들어 있기는 마친가지였다.
상황은 아주 심플하다. 면접 약속을 했고 늦는다 못 온다 연락도 없이 오지 않았다. 뒤늦은 사과를 보내왔지만 우리는 화가 났다. 잘못은 명백하게 약속을 어긴 응시자한테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화를 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어떤 답장도 보내지 못했다. 나에게 얼마 만큼의 화낼 권리가 주어졌는지, 그걸 어떤 문장으로 표현해야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지 판단이 안 섰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정리를 잘하게 되어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착착착 잘 정리해서 이해하고, 내 감정도 잘 정리하고, 표현은 그보다 더 잘 정리해서 하고, 만에 하나라도 상대가 오해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 오류 또한 잘 잡아내서 다시 잘 정리하는.
현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했다.
30여 분 사이 계속되던 문자와 전화가 응시자였던 자신의 ‘죄송하다’는 문자에서 갑자기 뚝 끊겨버린 것. 있어야 할 답장이 없는 것. 그 침묵에서 자신의 잘못과 우리의 실망을 읽길 바랐다.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면접을 보지 못한 게 덜 속상하고, 읽었다면 못내 아쉬운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