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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글 Jun 24. 2024

죽음을 앞두고, 남은 사람들에게


늦가을을 맞이하며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지는 것 뿐이니 슬퍼하지 마세요. 다음해에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당연한 일입니다. 저에겐 그저 가을이 온 것 뿐입니다. 저는 떨어진 낙엽이 되어 흙과 만나 나무와 다른 생명체에게 영양분이 되려고 해요. 겨울이 가고 날이 따뜻해져 운이 좋으면 다른 나뭇잎으로 돋아날 수 있겠죠.



한 장의 나뭇잎으로 살아가기가 어찌나 버거운지 돋아날 때는 몰랐어요. 그저 연두색 반짝이는 잎으로 영원히 나무와 공존할 것 같이 살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점차 진한 연두빛에서 초록색이 되고 흠집도 나다가 붉게 물드는 제 자신을 마주하게 되니 더 먼 풍경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저 내가 매달린 그곳만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저보다 높거나 낮은 곳에도 나뭇잎들이 있더라구요. 다른 형태의 다양한 나무들이 있었어요. 어느날 문득 다른 나무들에 매달린 나뭇잎들이 내는 소리도 듣게 되었습니다. 크기가 작거나 큰 나뭇잎, 병든 나뭇잎, 색깔이 다른 나뭇잎 등등.. 다양한 나뭇잎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그들을 뒤늦게 돌아보게 되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삶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유난히 무겁더라구요. 하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삶이 즐거웠습니다. 힘이 들땐 바다 내음을 크게 들이마셔보기도 했고요. 파도에 부서지는 햇볕의 영롱함에 넋을 잃기도 했답니다. 해가 지면 수면에 일렁이는 달빛은 어찌나 우아한지요.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조금 더 많이 담아둘 걸. 더 많이 느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제 욕심이겠지요. 그 아쉬움은 제가 다음 나무에 돋아나면 그곳의 풍경을 더 누리기 위함이라고 위안삼아 보겠습니다.



묵묵히 언제나 기댈 수 있도록 크고 굵은 줄기가 되어준 부모님. 제가 너무 매달려만 있진 않았는지 이제야 걱정이 되네요. 저는 이제 떨어지니 조금이나마 가벼운 줄기로 불어오는 바람에 즐거운 날들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다음 나무에서는 저의 줄기에 돋아나는 나뭇잎이 되어주세요.



제 옆에 어느순간 돋아나서 함께 해준 남편. 바람도 비도 눈도 함께 맞아주어서, 때로는 막아주어서 고맙습니다. 다음 나무에서도 꼭 옆 자리의 나뭇잎이 되어줬으면 좋겠네요. 당신이 있어 파도소리, 윤슬, 그리고 달빛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가끔씩 찾아와서 세상을 알려준 새들같은 친구들. 경험하지 못한 넓은 세상을 당신들이 알려준 덕분에 더욱 풍부한 삶이었어요. 제가 다음에 돋아나는 나무에도 날아와 주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항상 떨어지고 나서 스며들게 되는 흙속이 궁금했어요. 이제야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니 즐거운 마음으로 아래로의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저는 제가 좋아했던 나무인 플라타너스 밑에 잠들고 싶습니다.


한 나무의 뿌리가 되고, 잎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인간으로써 거스르는 삶만 살았다면 나무가 되어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자연에 몸을 맡기고 순응하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가끔 저를 찾아와 그늘에서 쉬거나, 수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거나 가을의 영롱함에 감탄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함에 춤을 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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