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만글 Jul 03. 2024

살면서 가장 억울했던 순간


Before B




글감을 보고 인터넷에 ‘억울하다’를 검색해보았다.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하다’라는 검색결과가 나왔다. 뜻을 명확히 알고나니 더욱 억울했던 순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도 ‘억울했던 순간.. 억울했던.. 억울.. 억울..’이라고 되뇌며 결국 나는 여름밤 짝짓기를 위해 개굴개굴 울어대는 개구리 옆 글을 쓰기 위해 어굴어굴하며 우는 어구리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억울하다고 느낀 적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아무 잘못 없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걸렸다. 정말 내게 아무 잘못이 없었을까? 누군가가 나를 미워했던 일? 그건 내가 미워할 여지를 주어서일 것이다. 층간소음에 시달렸던 일? 그건 내가 그 집을 선택해서 생긴 일이다. 강남스타일이 유행하던 시기 학교 축제에 싸이가 와서 인파에 깔려 말 그대로 죽을 뻔 했던 일? 그건 내가 앞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한숨을 들었던 디자인 시안이 사실은 내가 작업한 것이 아니고 사장님의 시안이었던 일? 그건 내가 그 회사를 선택하고 사장님을 잘못 만난 탓이다.



천주교인* 아니랄까봐 나는 내가 인정하는 모든 일을 ‘내 탓으로 돌리기 왕’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라고. 이처럼 나는 순간들을 전부 그때그때 선택한 내 탓으로 돌려버리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B(Birth) 이전에 정말 아무 잘못없이 억울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XX염색체의 여성이라는 것. 성염색체는 내가 선택해서 직접 고를 수가 없으므로 이것이야 말로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닌가. 여성으로 태어나서 억울한 일이야 수두룩하게 많지만 그 중 제일 억울한 일은 바로 매달 생리를 한다는 것이다. 좋게 봐서 뭐 몸 속의 노폐물을 배출하고 호르몬의 균형을 맞춰준다고 치자. 그런데 배란기의 통증은 도대체 왜?



*천주교인들은 미사 시간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시간이 있는데, ‘내 탓이오’를 세 번 외치며 본인의 가슴을 치는 시간을 갖는다.



어떤 일이든 잘 질려하는 나를 위해 배려심 넘치는 나의 포궁은 매달 새로운 배란통을 던져준다. 배가 콕콕 찌르거나, 극심하게 우울해지거나, 잇몸이 부어서 쑤시며 피가 왕창 난다거나 허리 통증이 심하다거나 여드름이 난다거나(하필 제일 아프고 제일 민망한 부위에만 돋는다), 멍청하게 접질렀던(이것도 내 탓이니 억울하진 않다) 관절 부분이 아프다거나, 변비가 온다거나, 속이 메스껍다거나, 몸에 열이 달아올라 짜증이 나며 식은땀이 난다거나, 식욕이 왕성해지거나(이것 또한 랜덤인데, 매운 맛이 땡기거나 단맛이 땡기며 치킨처럼 반반의 입맛은 없는 듯 하다), 가슴에 통증이 온다거나 등등..



특이한 것은 생리통은 매달 비슷한 증상으로 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배란통만 랜덤으로 던져주는 것일까? 생리통으로 오면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그 많은 것들을 견뎌내는 것이 안타까워서? 생리를 하기 전 마음의 준비를 위한 선전포고? 혹은 한 달에 일주일만, 일 년에 12주만 행복해야만 하는 여성의 거대한 숙명? 나는 아직도 배란통의 깔끔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것은 발기부전 관련 논문보다 5배나 적은 월경전증후군에 관한 논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참고로 월경전증후군은 여성의 90% 이상이 겪는다고 한다). <질의응답>이라는 책에서는 말한다. 생리는 임신을 잘하기 위해 인간이 다달이 하는 것일 뿐, 임신하지 않으면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나는 내가 인정하는 모든 일을 ‘내 탓으로 돌리기 왕’이 아닌가. 전생까지 끌어와서 ‘분명 전생에 아주 나쁜 짓을 저질렀을 거야’ 라며 내 탓으로 돌려 버렸다. 아마 그 아주 나쁜 짓은 배란통을 겪는 여성을 보며 비웃었던 일이 아닐까라며 자조해볼 뿐이다. 사실 이제는 나의 포궁과 밀당을 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일상 속에서 어느순간 찾아온 배란통의 기운을 느끼고는 ‘포궁 너어?’하고 와하하 하고 웃어버리는 것이다. 나의 포궁은 뒷머리를 긁적긁적하며 어쭙잖게 웃는 타입일지 시큰둥하게 받아들이라고 콧방귀를 끼는 타입일지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그저 오늘도 우울함과 변비를 달래기 위해 마그네슘을 입에 털어넣고 잠들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죽음을 앞두고, 남은 사람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