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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글 Jul 04. 2024

혼자 보내는 휴일


거슬림 합주곡의 지휘자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아침 7시23분.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구독 서비스 중인 달걀이 문 앞으로 배송되었단다. 조금 더 누워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달걀인데 빨리 냉장고에 넣어놔야지. 옆집에서 이 집은 왜 맨날 택배가 쌓였는지 생각하겠지'라며 몸을 일으켜 현관문을 연다. 쌀쌀한 아침 바람이 묻어있던 잠을 쫓는다. 박스에서 달걀을 꺼내 놓고 박스를 정리해서 현관문 앞에 내놓는다. 집 안 바퀴벌레 원인의 1순위가 택배 상자라는 것을 안 이후부터는 택배는 그자리에서 뜯고 갈무리해서 현관 앞에 내놓는다. 현관에서 박스를 정리하다보니 반송할 물건이 눈에 띈다. 새벽에 문 앞에 내놓으라는 문자를 받았으니, 반송할 택배를 잘 정리해서 상자에 넣고 테이프로 마무리해 현관 앞에 내놓는다.



다시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봄에 먹기 좋은 나물' 리스트를 구경한다. 봄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래 간장을 해 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계절이다. 몸을 일으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는데 수도꼭지에 낀 물때가 거슬린다. 옆에 꽂아 놓은 안쓰는 칫솔로 수도꼭지에 낀 물때를 제거한다. 하다보니 거울에 생긴 물자국들도 거슬린다. 마침 화장실에 습기가 차있는 김에 마른 수건으로 뽀독뽀독 거울을 닦는다. 머리를 말리려 화장대 앞에 서보니 화장대 위의 머리카락이 거슬린다. 물티슈로 화장대를 정리한다. 정리하다보니 얼마전에 찍은 인생네컷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봐도 웃긴 사진이여서 친구에게 그날 너 정말 웃겼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머리을 말리고 옷을 입는데, 옷장 정리가 엉망진창이다. 뱀 허물 벗듯이 벗어놓은 옷들과 속옷들을 정리하는데, 옷이 너무 많다. 안입는 옷들을 정리해 거실로 내놓는다. 거실로 나와보니 지난 밤 쌓아놓은 설거지거리가 나를 부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 안영미의 두시의 데이트'를 팟캐스트로 재생시킨다.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하겠다는 나만의 의식이다. 설거지를 위해 뜨거운 물이 나올때까지 수도꼭지를 열어 놓고 세탁실로 나가 세탁기를 돌린다. 그리고 건조기 안에 있는 옷을 꺼내고 먼지덩이를 버린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데, 조리대 위의 기름자국이 거슬린다. 주방용 락스를 꺼내 조리대와 인덕션 위에 뿌리고 고무장갑을 벗고 건조기에서 꺼낸 옷을 개킨다. 옷을 정리하는데 흰옷들의 목과 소매 부분이 거슬린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과탄산수소와 베이킹소다, 식초를 넣고 흰 옷들을 넣어놓는다.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주방으로 돌아와 때묻은 기름기들을 청소한다. 청소를 마치고 세탁기의 세탁물을 건조기에 넣는다. 건조기를 돌리고 거실로 돌아와 개킨 빨래들을 옷장 안에 차곡차곡 정리한다. 정리하고 돌아서는 순간 베란다를 보는데, 화분들 속의 노란 잎들이 거슬린다. 원예용 가위를 들고 화분들 안의 노란 잎들을 정리한다. 너무 많이 자란 아이들은 잘라서 물꽂이를 한다. 하다보니 흙이 너무 오래된 아이들이 있다. 장갑을 끼고 화장실용 의자를 꺼내와 분갈이용 돗자리를 편다.....



나는 아직 달래를 사러 나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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