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르르르륵 끄륵..'
어느날 문득 아빠한테서 파충류 소리가 났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분명히 들었다. 그 소리는 분명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기 전 목을 푸는 소리 같았고, 공룡이 고개를 갸웃갸웃할 때 나는 소리같기도 했다. '나만 들었나?'라고 생각하며 엄마와 동생을 쳐다봤지만 둘 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텔레비젼만 보고 있었다. 내가 잘못들었다고 생각하고 자세를 고쳐앉으려는 순간,
'끄르륵? 끄르르..'
이건 분명하다. 아빠는 파충류가 되어가고 있다. 아니, 이미 파충류였나?
그날 밤, 나는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이불을 덮고 베개를 수시로 고쳐가며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어느순간부터 아빠는 연신 반소매 옷을 입었고 심지어 어느 날은 출근을 하는데도 민소매를 입었다. 또 부쩍 피부를 긁더니 아빠가 앉은 자리에는 유독 가루나 비닐 소재의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왜 여태껏 몰랐을까. 엄마와 동생은 알고 있는건가? 그나저나 회사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날 밤, 혀를 길게 빼고 날아다니는 파리를 초콜릿 먹듯이 잡아먹는 아빠 꿈을 꾸고 잠을 설쳤다.
아침을 먹기 위해 앉은 식탁에서는 내 눈을 의심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아빠의 밥그릇에 여지껏 잡곡이라고 생각했던 그것들을 자세히보니, 움직이고 기어다니는 애벌레였던 것이다. 밥을 먹다가 순간 말문이 막힌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준비를 하고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 회사에 가는 내내 그동안 아빠의 행동들을 곱씹다가 출근 후, 쌓여있는 서류더미에 파묻혀 집안일을 잊고 말았다.
야근 후, 퇴근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 밤은 가족에게 이 이야기를 꼭 해보리라며 다짐을 했지만, 뭐라고 서두를 꺼내면 좋을지 망설여졌다. '아빠가 이상해?', '아빠가 파충류야?', '아빠한테서 이상한 소리 나지 않아?' 등등.. 고민에 빠졌다가 버스 안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나는 질문은커녕 피곤에 찌들어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 아빠를 찾았지만, 회사일이 바빠 먼저 출근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날 저녁도, 그 다음날 아침도 서로의 존재감을 잊은 채 우리는 출근과 퇴근을 하기 바빴고, 그렇게 아빠의 특이점은 내 머리 속에서 평범함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