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용구 Apr 21. 2024

시발

제식 훈련을 하다가

詩, 발

               인용구

    걷지 않는 날이 없었다. 가난을 닦아내는 와이퍼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던 두 다리, 그 끝을 감싼 낡은 운동화. 조금 작았던 신발 안에는 발가락들이 부화를 기다리는 알처럼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발은 매일 폭풍을 견뎠다. 보폭의 파도를 따라 발목에 매달리고 짓눌리기를 반복하며, 불쾌한 습기 속에서 발은 단내를 내뿜었지만 불평은 내뱉지 않았다. 하나의 존재를 이고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발은 그만큼의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더욱이, 발은 둘이었다.

    신체의 모든 부분에서 양발만큼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는 없었다. 한 눈으로도 볼 수는 있고, 한 귀로도 들을 수는 있지만, 한 발로는 걸을 수 없다. 걷는다는 것은 믿음의 행위였다. 하나의 발이 추가 되면 다른 발은 축을 맡으며, 언제나 서로가 자신을 지탱해 줄 거라는 신뢰를 갖고 앞으로 나아갔다. 넘어지는 자리에는 늘 뒤에 있던 발이 앞서 있었다. 몸무게를 주고받는 이 위태로운 동작이 익숙해지는 것은 제법 짜릿하고 신명 나는 일이어서, 심장의 박동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리듬감을 만들었다.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맡긴다. 완벽한 믿음. 두 발은 멈춰 있는 동안에도 짝다리를 번갈아 짚으며 홀로, 그렇게 함께 무게를 버텼다.


   오늘은 유독 먼 거리를 걸은 날이었다. 정확히는, 오래 헤맨 날이었다. 잠시도 어느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발을 단단한 땅에 부딪혀댔다. 그러나 발은 군말 없이 가장 낮은 곳에서, 햇빛도 닿지 않는 좁고 낡은 운동화 안에서 오늘도 내게 충성했다. 숙소에 들어온 나는 피곤을 핑계 삼아 발을 서로 문질러 대충 씻고 몸을 뉘었다. 그런데 시발, 이불이 짧았다. 이리저리 이불을 발로 차다가 결국 두 발을 드러내고 자기로 했다. 짜증이 확 나서 몸을 일으켜 발 쪽을 쳐다보는데 그만, 보고 말았다.

    내가 누워있으면 발은 서있었다. 천장을 향해 발끝을 세우고, 물집을 차고 티눈을 부릅뜬 채, 밤새도록 불침번을 자처하고 있었다. 그런 발이 둘이나 있었다. 넓은 발등을, 굽은 발가락을 보다가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발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못난 주인. 사명감 없는 나의 역사와, 애꿎은 발자취. 그런 두서없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다. 괜히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는, 그런 밤이.



    제식 훈련을 하다가 기억이 난 글입니다. 훈련소 생활은 의외로 적성에도 맞고 즐겁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휴대폰 제출 10분 전)


매거진의 이전글 봄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