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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Jul 10. 2024

피식대학이 돌아왔다.


경북 영양과 피식대학


    지난주에는 경북 영양을 방문했다. 연구실 과제로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와 협업을 하고 있는데, 영양군에 있는 센터로 직접 가서 이것저것 설치하고 보여드릴 것이 있어서 함께 연구하는 형과 둘이서 다녀왔다. 작년에도 교수님과 동행하여 한 번 출장을 온 적이 있었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영양이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여서 반가웠다. 두 번 갔다고 정들 일이냐 싶긴 한데 작년에 다녔던 길거리, 상가들 모두 새록새록 기억나는 것이 신기했다. 지난번에는 교수님과 함께 갔던 술집을 다시 찾아가서 이번에는 경상도 소주 "참"을 마시며 참참참 게임도 하고 (사실 참참참은 안 했고, 그냥 참 소주를 각자 세병 반씩 마셨다) 참 좋은 시간을 가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로컬 막걸리인 은하수 푸른 밤/깊은 밤 라인업을 사 왔는데, 둘 다 맛이 좋았다.

영양 출장의 추억. 술 사진밖에 찍은 게 없다...


    사실 작년 출장을 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영양이라는 지역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양양이요? 강원도 양양 아니고 영양? 영양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나저나 이름 되게 재밌네, 영양. 뭔가 건강한 느낌이죠? 막 이러면서. 실제로 대전에서 두 시간이 걸려 찾아간 영양은 정말 작은, 말 그대로 별 볼 일 없는 동네가 맞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양이 내건 홍보 슬로건은 "별천지 영양"이었다. 별 볼 일 많네, 와! 다시 말해 땅 위에는 불빛도 무엇도 없으니, 맑은 하늘이나 올려다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나만의 쁘띠 영양군이, 1년 사이에 아주 유명해졌다. 바로 300만 유튜버 피식대학 때문이다


    피식대학은 개그맨 정재형, 김민수, 이용주가 운영하는 코미디 채널로, 숏박스와 함께 개그맨 유튜버 중에 가장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다. 작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예능 작품상을 유튜브 컨텐츠로 최초로 수상하기도 했다. 나도 <한사랑 산악회>, <05 이즈백> 등의 컨텐츠를 즐겨보며 이들을 구독하고 응원했다. 그런데 두 달 전, 피식대학이 경상도 지역을 여행하며 소개하는 컨텐츠 "메이드 인 경상도"에서 경북 영양을 다루는 방식이 지역 비하 논란을 일으키며 한동안 공중파 매체까지 뜨겁게 다룬 적이 있다.

피식대학, 당신도 나락에 갈 수 있다.


    나도 논란의 영상이 올라왔을 때 직접 보면서, 김민수 점마 저렇게 입 함부로 놀리다가는 곧 못 보겠는데?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더니 피식대학이 그대로 "나락"에 가버렸다. 피식대학의 최근 대표 컨텐츠가 <나락퀴즈쇼>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나락퀴즈쇼>는 "OOO, 당신도 나락에 갈 수 있다." 라는 제목으로 유명인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며 난처해하는 모습을 담는 컨텐츠였다.)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구독을 취소하고, 커뮤니티에 올린 사과 게시글에도 온갖 욕 댓글이 달렸다. 논란의 영상은 비공개 처리되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나는 솔직히 피식대학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파는 개그맨이라는 직업 특성상, 이미지가 이렇게 나빠지면 누가 그들을 향해 웃음을 보여줄까 생각했다. 더군다나 "캔슬 컬처(Cancel culture)"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대한민국 대중들은 그들이 어떻게 복귀할 것인지도 예측하며 "영양이란 단어에 움찔하는 것 금지, 자학개그 금지, 6개월 내 복귀 금지" 같은 구체적인 지시사항으로 관짝에 못을 박는 듯했다.


    그런데 어제 피식대학이 새로운 영상을 올렸다.



피식대학이 돌아왔다.



    유튜브에는 6개월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논란을 일으켜 나락에 간 유튜버들도 6개월 이상 유튜브 활동이 없으면 수익 창출이 끊기기 때문에 반드시 6개월 내에 돌아오더라-는 법칙이었다. 피식대학의 자숙기간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기존의 컨텐츠 <피식쇼>를 올리는 세 개그맨의 얼굴이 우려했던 것보다 밝았다. 오히려 영상을 올리지 않은 두 달 동안 새로운 포맷의 컨텐츠를 여럿 기획해서 예고편을 올리기까지 했다.


    솔직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고백하면 나는 피식대학을 꽤 좋아했다. 물론 영양에 대한 지역 비하 발언은 변명의 여지없이 섣부른 언행과 잘못된 단어 선택이 부른 대참사가 맞지만, <나락퀴즈쇼>의 마지막 멘트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그 실수가 그 사람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라는 말도 나는 맞다고 생각해서.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사회이기를 바라서. 이들이 낙담하고 좌절하며 영영 나락에 빠져있지는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툭 까놓고 말해서, 사실 같은 잣대로 바라보면 나도 영양 비하 발언을 한 게 맞거든. 우리 사회는 유명인의 몰락을 너무 득달같이 소비한다. 스스로 자초한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캔슬 컬처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해서 일말의 동정심이 들기도 했다.


    내가 피식대학의 구독을 취소하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피식대학이 새로운 영상을 올리면 그들의 재기를 누구보다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그새 얼굴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면서, 반성하고 조금은 성숙해졌을 그들이 어떤 새로운 컨텐츠로 다시 나에게 웃음을 줄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나는 가끔씩 그들의 근황을 확인했다. 아무 소식이 없을 때에도 그래,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안 좋은 소식 기사를 보면 아주 많이 심란할 것 같아서. 조용히 그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성공적으로 컴백한 것 같다. 이용주의 힘찬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피식쇼 영상을 틀어놓고 나는 사람들의 반응부터 보았다. 예전 같기야 하겠냐마는, 하루 만에 50만 회에 가까운 조회수가 찍히고, 댓글창도 그들의 복귀를 환영하는 내용의 응원들이 많이 달려있었다. 피식이즈백. 그래, 차라리 이렇게 사과 한 번 하고 난 다음에는 조금은 뻔뻔하게, 그래도 당당하게 원래의 페이스로 돌아가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피식대학이 또 새로운 영상을 올렸다. 이 녀석들, 조금 쉬었다고 또 부지런히 달리는구나! 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클릭했다.


    그리고 영상을 끝까지 본 나는 마음은, 조금은 심란한 마음으로. 피식대학의 구독을 취소한 뒤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금은 나아지지 그랬어.



    올라온 영상은 피식대학이 나락 가기 직전에도 종종 올렸던 인터넷 강의 같은 컨텐츠였다. 전에도 정재형이 "너드학개론"이라는 제목으로 너드와 찐따의 차이를 설명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비슷한 포맷으로 촬영을 했다. 썸네일의 제목은 "통풍학개론". 통풍, 누구나 걸릴 수 있다-라는 <나락퀴즈쇼>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영상은 초빙(?) 강사 개그맨 이승환이 통풍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재밌게 푸는 내용이었다. 나도 가까이에 20대 중반에 벌써 통풍에 걸려버린 친구가 있어서, 재밌게 영상을 시청하며 영상 링크를 보내 놀려줄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문제의 발언들이 등장했다.


통풍호소인. 통밍아웃.

    통풍호소인. 언젠가부터 천재 호소인, 금수저 호소인 뭐 이런 말이 들리더니 OO호소인이라는 단어는 꽤 재치 있는 밈이 되어버렸다. 나도 "펩시는 콜라가 아니다. 콜라호소액이다."라고 친구한테 말하며 유쾌하게 밈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그 유래를 알고 난 후에는 쓰지 않는 단어이다. 관련해서는 아래 브런치 게시글이 잘 정리해 두어서 공유한다.


사과집 님 브런치 게시물: https://brunch.co.kr/@applezib/412

'피해호소인'이란 단어가 대중화된 건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을 때부터다. 2020년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피해 호소인'이란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박 전 시장을 두둔하기 위해서였다. 그전까지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며 '피해자', '피해 여성'이란 단어를 써온 것과 대비대는 태도였다.

(...) 호소는 문제인가? 최인숙 인권위 조사관이 쓴 <어떤 호소의 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피해자들의 호소를 다정하게 담는다. 본래 '호소'란 억울하거나 딱한 사정을 남에게 간곡히 알린다는 의미다. 피해자는 호소한다. 그러나 '피해 호소인' 이후, 피해는 부정되고, 호소는 오염되었다.

(...) 박원순이 사망한 그해, MBC 입사 시험에는 피해자를 무엇이라고 부를지 서술하란 문제가 나왔다. 이를 알게 된 피해자는 "내가 방송국 앞에서 죽으면 믿어줄까요?"라고 했다.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 김잔디 씨는 2022년 생존 기록을 출간했다. 책 제목은 다음과 같다.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 사과집 님 브런치 게시글, <'OO 호소인'이라는 밈> 중 발췌.


    위 글에서 꼭 읽었으면 하는 부분들은 따로 인용해서 적어놓았다. 피식대학이 이런 맥락을 알고서도 그런 유래의 밈을 사용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냐, 사실 피식대학은 박원순 전 시장과 성폭력 사건의 내용을 알고 있을 테다. 통밍아웃 (통풍 + 커밍아웃)이라는 단어도, 커밍아웃이라는 단어가 성소수자들이 본인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에서 유래한 단어임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그 단어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썼을 것이다. 그 지점에서 환멸이 났다.


    내가 느낀 불편함을 사과집 님 글을 빌려 이야기하는 김에 조금 더 인용해 보겠다.


    "언어는 원래 오염되고 확장된다. 누군가 어떤 단어를 쓰는 이유는 악의가 있다기보단 그저 유행하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전문가 정유라는 <말의 트렌드>에서 '밈해력'은 시대를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단어가 누구를 소외하는지 민감하게 지켜보며 신조어를 즐기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감히 단어를 쓰다니!" 식의 범람하는 지적이 PC하단 불만도 이해 간다.


그런데 유독 'OO 호소인'이란 단어 앞에서 내 마음은 조급해진다. 이 단어에 상처받을 분명한 한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유튜브를 보다가, TV를 보다가 마주하게 될 상황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복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더럽게 깐깐하게 트집 잡네! PC충이네!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일단 나는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단어를, 쉽게 사용하는 유튜버를 더는 흐린 눈으로 용인하며 보고 싶지 않았다. 피식대학 사과문에 달린 댓글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었다.

개그맨들은 똑똑하고 동시에 부지런해야 한다.

피식대학은 여전히 소홀하고 비겁했다. <한사랑 산악회>나 <05이즈백> 같은 컨텐츠에는 그래도 뛰어난 관찰과 표현, 해학과 공감 등을 통해 전달하는 따뜻한 웃음이 있었다.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섣부른 언행으로 나락을 다녀와본 만큼 조금 더 조심하고 신경 쓸 줄 알았다. 밈 없이는 개그를 못하나? 밈을 사용하고, 또 생산하는 코미디언으로서 그들이 사과문에 올린 말대로 "코미디언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다면 분명 지양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 혐오 표현 하나 없이도 멋진 코미디를 할 줄 아는 녀석들인 걸 알아서 더 아쉬움이 컸다.  


    한편으로는, 경상도 지역 비하에는 "긁"히면서 통풍 풍호소인, 통밍아웃 정도는 우습게 넘기는 구독자들과 더 이상 같은 진영에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런 말은 안 되지만 저런 말은 괜찮다는 거잖아. 항상 이런 식이다. 만약 피식대학이 "드릉드릉" (여성 커뮤니티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데, 페미 용어(?), 남성 혐오(??) 같은 단어라서 쓰면 안 된다고 일부 누리꾼들이 주장한다.) 같은 표현을 썼으면 또 얼마나 댓글창이 시끄러웠을까? 그들은 임영웅에게 대들었던 것보다 더 기세등등하게 피식대학을 묻으려 하지 않았을까? 나는 유튜브를 보면 영상을 보고 댓글도 읽으며 사람들의 재치 있는 댓글들을 즐겨 보는데, 너희들의 해학도 나는 더 이상 관심 갖지 않으려고 한다.


    요약하면, 피식대학을 손절하는 것은 예전에 롤박사 X도리를 구독 취소했을 때와 같은 이유다. 관련한 썰은 여기: https://brunch.co.kr/@quotation2520/76

그때처럼 실망했다고 댓글을 달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말한다고 해도 목소리가 닿지 않을 것 같아서. 오히려 피식대학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또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가면서, 또 내가 예상한 수준의 저열함을 내비칠까 봐. 캔슬 컬처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아서, 조용히 떠나지만 혼자 일기를 써본다.  그래도 너희들이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서 반가웠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니 이제 마음 놓고 떠날 수 있겠다.


좋아했다, 피식대학.

조금은 변하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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