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초새벽 별비 소식에 가장 어두운 공터를 찾았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북동쪽 하늘을 올려다보며, 몇 안되게 알아볼 수 있는 카시오페아 자리를 발견했다. 거기서 한 뼘, 저기가 페르세우스 자리일 것이다.
고개를 올려드는 것은 오랜만이라 목이 아팠다. 그냥 주차장 아스팔트 바닥에 냅다 누워버렸다. 적재 노래 같은 걸 틀을까 하다가 밤벌레 소리를 듣기로 했다. 밤이 깊도록 조율을 끝내지 못한 벌레들은 결국 저마다의 연주를 하고 있었다.
하늘이 온통 맑은 것은 아니었는데 다행히 밤이 깊었다. 산등성이 너머로 도시의 빛이 넘실거렸지만 올려다보는 방향의 허공은 짙게 검었다. 암순응을 마친 눈은 천천히 하늘 너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먼 길을 여행한 별빛이 내 이마에 닿았다.
나는 소원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의 성공을, 가족의 안녕을, 너의 행복을 빌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나는 기도를 반복했다. 오늘밤의 소원은 그냥 유성 하나 보는 것으로 만족할까 생각이 들 즈음
점뿐이었던 밤하늘에 찰나 동안 선이 생겼다.
일당백 검객의 칼끝처럼, 반짝하는 궤적 하나가 우주에 실금을 그었다.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나는 허리를 세우고 앉아 한참 그 형체 없는 흔적을 응시했다. 별방울은 금세 공기에 스며들었다. 다시 목이 아파진 나는 등을 바닥에 붙였다.
시선으로 이리저리 별 사이를 연결하는 동안, 나는 몇 개의 실선을 분명 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 침침해진 눈이 만든 잔상이었거나 나의 소원이 만든 허상이었을 것이다.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4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휴대폰이 괜히 밝아서 눈을 찌푸렸다.
기사에 따르면 4시가 가장 비가 거센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별비는 땅을 두들기는 소리 없이, 폭죽의 높은 비명 없이 고요히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참을 기다려보았지만 처음과 같은 분명한 별줄기는 확인할 수 없었다.
눈을 깜빡이지 않고 있으면 별들이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만 눈을 감아 천구를 리셋했다. 하도 같은 곳만 반짝이니까 익은 자리는 사뭇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또,
분명히 없었던 별 하나가 천천히 지평선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행기라기엔 빠르고도 멀었다. 눈으로 좇는 동안에도 그것은 이글거리며, 산 너머를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저건 운석이겠다, 확신이 들었다. 너는 땅에 닿겠구나, 생각하며 재빨리 아까의 기도를 되뇌었다. 성공이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누워있다가, 슬슬 베고 있던 손등이 아프기에 일어나야지 하려는데 한 번 더 확실한 별줄기를 봤다. 또 마구 가슴이 두근대서 다시 누워보았으나, 오늘의 운은 딱 그만큼이었다. 귓가에서 모기가 소프라노 솔로를 가창하기에 손을 휘저으며 일어났는데, 벌레들은 수금도 확실하더라. 어깨 근처에 몇 방 물렸다. 귓볼도 간지러웠다. 그래도 이 정도면 거저에 가깝다. 성우(星雨)가 온다기에 몇 번 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확실하게 눈에 새긴 적은 처음이었다.
기분이 좋아 맥도날드를 들렀다. 해시브라운 2개를 먹고 아이스커피 라지를 시켰다. 오늘의 새벽을 기록하고 싶어서, 여느 아침을 맞이할 여러분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하늘이 밝아오도록 이른 일기를 썼다.
어떤 날은, 하늘보다 높은 곳에도 비가 내린다.
구름이 없는 곳에서만 그 비를 볼 수 있다.
어젯밤에는 또 유성우가 한참을 쏟아졌다고 한다. 제출 준비 중인 논문을 들여다보느라 직접 하늘을 살피진 못했고, SNS등에서 확인한 어제의 별똥별은 참 볼만했겠다 싶었다.
비 맞는 걸 좋아해서 가끔 우산 없이 걷기도 하는 나는, 당연하게도 유성우 보는 것도 좋아한다. 정말 바쁠 때를 빼면 유성우 예보가 있는 날 밤에는 내가 아는 가장 어두운 공터로 나가 하염없이 밤하늘을 보고는 한다.
물론 별똥별을 하나라도 보면 성공이겠다 싶을 정도로, 정말로 별 볼 일 없는 짓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평소보다 오래 우주를 볼 수 있어 좋다. 생일이 아닌데도 소원을 생각해 보는 일이 좋다. 아주 먼 곳의 무언가가 아주 짧은 시간 눈에 보였다고, 운이 좋다며 기뻐하고 기억에 오래도록 새기는 일이 좋다.
보통은 혼자 즐기는 우주 쇼지만, 요즘은 그것을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사실 혼자 본 별똥별은 내 간절함이 만든 환영이었을지 진짜였을지 구분이 안 가서, 그 순간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었다. 이번 기회에는 아쉽게 못했지만, 다음 비소식이 있으면 아예 별 잘 보이는 동네로 놀러 가 함께 밤새도록 하늘을 보는 것도 좋겠다.
위의 글은 이번에 쓴 건 아니고 3년 전 오늘 쓴 거다. 그때도 페르세우스 유성우였다. 진짜 딱 3년 전 오늘도 비가 내렸다는 게 신기하다. 2027년 8월 12일 밤에도 유성우가 내릴까요? 살짝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