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나에게 글을 쓴다

일상과 책, 영화나 여행에서 나를 붙잡아 두는 이유

by 김남정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낸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기 위해서다. 글을 쓰는 시간은 하루의 끝에서, 또는 지난 하루를 꺼내어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무엇을 잘했고, 무엇이 마음에 남았는지, 왜 어떤 하루는 크게 웃었는지를 차분히 돌아보는 일이다. 그래서 글은 기록이면서 동시에 성찰에 가깝다.


나는 종종 글은 글쓴이의 내면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릇의 모양과 그 안에 담긴 내용이 항상 닮아 있는 것은 아니다. 단정한 문장 안에 어수선한 마음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투박한 문장 속에 오히려 가장 진솔한 감정이 담기기도 한다. 그래서 겉모습만 보고 그 안까지 판단하는 일은 쉽지만 위험하다.


내가 주로 쓰는 이야기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다. 하루의 일상, 읽은 책 한 권, 남편과 우연히 본 영화 한 편, 잠시 머물렀던 여행지의 풍경에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쓰는 이유는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가장 솔직한 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마음이 멈춘 문장 하나,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울컥했던 장면들, 여행지에서 낯선 골목을 걷다 괜히 발걸음을 늦췄던 순간들이다. 그때의 감정은 크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나는 그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글로 붙잡아 둔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는 약점과 단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쉽게 흔들리지 않으려, 지나간 일들을 감사함으로 기억하기 위해, 하루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지금 이 마음들을 글 속에 올곧게 남겨두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시를 쓰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단 몇 줄로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이 늘 경이롭다. 오래전 기형도 문학관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시의 울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꼈다. 대단한 설명도 화려한 장치도 없었지만 문장 하나 앞에서 한동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좋은 글은 사람을 설득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 안에서 말을 건넨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여전히 완성된 문장을 쓰지 못한다. 돌아보면 고쳐 쓰고 싶은 문장뿐이다. 그럼에도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일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적어도 나를 나에게서 멀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일상에서, 책에서, 영화에서, 여행지에서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발견을 조용히 문장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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