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하의 물소리와 조르바가 가르쳐준 삶의 감각
"인생이란 망쳐도 아름답지."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망쳤는데 아름답다니, 위로치 고는 꽤 대책 없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인생이 망쳐졌다고 느끼는 순간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한다. 기대하던 일의 실패, 돌이킬 수 없는 선택, 관계의 어긋남, 혹은 오래 붙잡고 있던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했던 순간들이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끝난 것 같다."
"다 망쳤다."
하지만 조르바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한다.
인생을 망쳤다고 느껴질 때, 사실 삶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기대했던 그림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뿐이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럴 때 나는 오래전 학생들과 논술 수업을 떠올린다. 제시문으로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나왔던 날이었다.
한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이 글이 잘 이해되지 않아요. 황하 물소리가 왜 그렇게 중요하죠?"
아이들이 어려워했던 것은 단지 고전 문장이 아니라 그 소리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였다. 같은 강물인데, 왜 박지원은 그 소리를 그렇게 길게 적었을까.
박지원은 황하를 바라보며 그 거대한 강물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대해 기록한다. 쉼 없이 부딪히고, 탁류가 뒤섞이며, 귀를 막아도 가라앉지 않은 굉음. 그 소리는 정갈하지도,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지도 않다. 그러나 그는 혼란스러운 물소리 속에서 자연의 진짜 얼굴을 본다.
나는 수업 시간에 이렇게 설명하려 애썼다. 황하의 물소리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들리지만, 그 소리를 받아들이는 마음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누군가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이지만, 박지원에게 그 물소리는 흔들리는 세상과 인간의 마음을 닮은 소리였을 것이다. 정돈되지 않고, 부딪히고, 멈추지 않는 삶의 흐름 같은 것이다.
그때의 학생들은 아직 그 차이를 받아들이기에는 일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시절에는 같은 소리를 다르게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삶에 중요한 감각인지 완전히 알지 못했다.
우리는 인생이 조용하고, 단정하고, 예측 가능하길 바란다. 하지만 실제로 살다 보면 우리의 하루는 황하처럼 탁하고 시끄럽고,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뒤섞여 흐른다. 인생이란, 망쳐도 아름답다는 조르바의 말. 망쳤다고 느꼈던 날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그 안에는 늘 무언가 남아 있었다. 지나간 관계의 온기, 끝내 해내지 못한 일의 그림자,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시간들이다.
부족한 날에도 하늘은 있었고, 슬픈 눈에도 별은 떠 있었다. 등대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 불빛을 발견하는 쪽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조르바는 그 빛을 "아름다움"이라 불렀고, 박지원은 그 혼란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라 받아들였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언어로 표현했지만, 두 사람은 같은 말을 건넨다. 삶은 정돈된 순간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문장은 삶을 낙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망가진 자리에서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고 조용히 건넬 뿐이다.
같은 하루를 두고도 누군가는 소음이라 하고, 누군가는 삶의 소리라 부른다. 황하의 물소리처럼, 삶도 듣는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다. 지금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내일이 있고, 그다음 날이 있다. 아름다움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계속 흐르고 있다는 사실 안에 조용히 숨어 있다.
망쳐도 아름답다는 말은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내려놓으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다만 오늘의 삶을 조금 더 귀 기울여 듣자는 제안이다. 그 정도면, 활력 있는 하루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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