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비사비가 가르쳐준 삶의 태도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광이 바랜 목재 간판, 일부러 고치지 않은 벽의 균열, 새것보다 오래된 물건을 더 소중히 다루는 손길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오래전 처음 일본여행 당시 난 '왜 이렇게 낡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풍경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와바사비'는 그들이 일부러 선택한 미학이기 전에 이미 삶 속에 스며든 태도처럼 보였다. 완벽함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지금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부족함을 결함으로 규정하지 않고 시간이 남긴 흔적으로 존중하는 태도다.
딸들과 오래전 함께했던 가족 여행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금각사 근처의 유명한 찻집이었다. 일본식 정원 특유의 아름다움이 진하게 배어있던 그곳엔 내가 생각한 만큼 모든 것이 정갈하지 않았다. 컵에는 미세한 금이 가 있고, 테이블은 균형이 잘 맞지 않았고, 벽지는 군데군데 색이 바래있었다. 그럼에도 그 공간에는 안정된 공기가 흘렀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머물 수 있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그 찻집의 풍경을 떠올리며 나는 자연스럽게 내 삶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이래서는 안 된다'며 밀어내며 살아왔을까. 조금 늦어진 계획이나, 완벽하지 않은 하루, 흔들리는 마음을 자꾸만 고쳐야 할 문제로만 여겨왔다.
여러 나라 장인들이 소개되는 다큐프로그램에서 본 일본 장인들은 작은 흠을 숨기지 않는다. 도자기에 생긴 균열을 금으로 메워 다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릇은 새것이 되지는 않지만, 이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담게 된다. 그 과정 자체가 그릇의 가치가 된다.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모든 순간을 매끈하고 반들반들 윤기 나게 만들 수는 없고, 어떤 흔적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흔적 덕분에 삶은 조금 더 깊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일본인들처럼 삶을 대하려 애쓴다기보다, 그들이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마음에 담아본다. 모든 것을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 지금 가진 상태로도 충분히 하루를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완벽함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지나치게 애쓰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부족한 채로도 관계를 이어가고, 흔들리면서도 하루를 건너가며, 모자란 마음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일이다.
'와비사비'는 나에게 더 잘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살아내고 있는 이 하루를 조금 더 믿어도 괜찮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이미 살아내고 있는 이 하루를 조금 더 믿으며, 나는 그 단어의 무게를 느끼며 오늘도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조용히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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