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우리는 잘 웃지도, 잘 울지도 않게 되었을까

울음과 웃음이 줄어든 어른의 마음에 대하여

by 김남정

웃음과 울음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마음이 맑을 때만 가능한 행위라는 점이다. 계산하지 않고,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사람은 웃고 울 수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일수록 잘 웃고, 잘 운다. 아이들은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아직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을 그대로 흘려보낸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운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순수하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웃음도, 울음도 조금씩 잃어간다. 웃음은 상황을 살피느라 늦어지고, 울음은 참아야 할 감정이 된다. 울면 약해 보일까 걱정하고, 웃으면 가벼워 보일까 염려한다.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먼저 '적절한가'를 판단하는 습관이 생긴다. 그렇게 마음은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감정은 안쪽으로 기운다.


얼마 전 큰 이모님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장례식장을 찾았다. 분명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슬프지 않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슬퍼서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질 틈을 찾지 못한 느낌이었다. 울지 않은 내가 낯설었고, 그 낯섦이 또 하나의 슬픔이 되었다.


어릴 때는 슬프면 그냥 울 수 있었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참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순수하다는 것은 감정을 의심하지 않는 상태다. 기쁘면 기쁜 줄 알고, 아프면 아픈 줄 아는 것. 그 단순한 확신이 웃음과 울음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잘 웃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은 대개 잘 울기도 한다. 다시 말해, 감동과 감격이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다. 멋진 풍경 앞에서 마음이 움직이고, 아름다운 장면 앞에서 잠시 말을 잃는 사람. 감정이 메말라 있지 않다는 증거다.


모든 예술의 중심에는 감동이 있다. 들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음악, 보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그림, 읽어도 아무 잔상이 남지 않는 문학, 보고 나와도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는 영화는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우리가 예술을 찾는 이유는 감정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일 것이다.


울고 나면 마음이 조금 시원해지는 이유도 같다. 웃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는 이유도 같다. 묵은 감정이 빠져나갈 출구를 찾았기 때문이다. 웃음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웃음은 마음속에 쌓인 긴장을 풀고, 굳어 있던 감정을 느슨하게 만든다.


감정은 타고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습관에 가깝다. 자주 표현하는 사람은 감정을 잃지 않고, 늘 억누르는 사람은 점점 둔해진다. 솟구치는 감정을 잃지 않고, 늘 억누르는 사람은 점점 둔해진다. 솟구치는 감정을 참고 누르는 일이 한때는 미덕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음을 말려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웃음과 울음을 잃어간다는 것은, 삶의 감각을 조금씩 잃어 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기뻐도 무덤덤하고, 슬퍼도 담담해지는 상태. 그 평온함이 단단함이 아니라 무감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일부러라도 웃고, 울려고 한다. 감동 앞에서 마음을 닫지 않고, 슬픔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하지 않으려고 한다. 웃음과 울음은 감정의 낭비가 아니라,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가장 솔직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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