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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인 Nov 30. 2021

무탈하길 바라봅니다.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딸에게




아침 7시 시험장 앞 횡단보도에서 인사했다.

"엄마는 여기까지! 잘 다녀와~"


하얀 까만 횡단보도를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손에는 투명 파일에 수능 수험표가 들어 있어 덜렁덜렁 흔들린다. 조금이라도 주춤하거나 손이 덜 흔들리며 힘없어 보였으면 내가 뒤돌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아이는 성큼성큼 걸어서 교문 앞에서 수험표 검사하는 선생님께로 향했다. 아직 학생들이 입실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학생들도 학교 앞의 차량들도 별로 없어 그런지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그냥 보통 등교하는 아이의 모습 같았다. 푸르스름한 방역복을 입은 선생님들만 없었다면 말이다.



다행히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학교로 수험장이 발표되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먼 거리이든 근 거리이든 아이에게는 모두 낯설고 떨리는 곳이리라.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들어본 이름의 학교여서 가끔 지나가다 보던 학교여서 반갑고 감사했다.



8시 40분, 1교시 시작 시간에 맞춰서 기도를 하기 위해 성당으로 갔다. 예년에는 수험생들 엄마들끼리 같이 모여서 피정을 했다 하는데 작년부터는 코로나로 인해 다 함께하는 피정은 사라지고 각자 알아서 기도하는 걸로 바뀌었다고 한다. 성당에서는 한분이 기도하고 계셨고 조명을 다 키는 것보다 아늑해서 가져간 LED초 켜고 앉아서 기도를 시작했다. 오후 늦게까지 기도할 생각은 아니라서 조금 기도하다가 근처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려고 노트북도 챙겼다. 집에 있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 같아서 종종 가는 마재성지나 구산 성지를 갈까 하다가 먼길 가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 기도하던 나의 성당이 편하게 느껴졌다.


국어 시간 동안 아이의 무탈을 기도했다. 20여 년 전 나의 수능은 내 배가 아파서 수능시험장으로 가는 전철을 쭉 타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 화장실에 갔었어야 했다. 부글 거리는 배를 가라앉힐 방법이 따로 없으니 부디 시험 시간에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기도했고, 들고 가지도 않은 핸드폰이 울릴까 걱정되는 것처럼 다양한 사고로부터 안전하기를 기도 했다. 10시 미사를 아이 이름으로 지향을 넣고 기도한 후 2교시 수학 시간에는 제일 어려워하는 과목이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문제 한 문제 모두 풀어 볼 수 있기를 기도했다. 수학 시간에는 간절함이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부다 한 문제라도 해답을 찾아가는 길을 찾길 바랬다.


점심시간은 성당 옆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따뜻한 청국장을 먹었다. 유난히 수능 한파 없이 낮 기온 15도에 이르는 따뜻한 수능 날이기는 했지만 큰 성당에서 난방 없이 오래 앉아 있으니 손과 발이 시리고 몸이 좀 떨리던 참이어서 따뜻한 국선택은 필수였다. 경량 패딩을 하나 더 챙겨 입고 무릎담요를 하나 더 챙기려고 5분 거리의 집으로 향했다. 점심 이후 카페에 가려던 계획은 계속 기도하기로 바꾸었다. 혼자 앉아 기도하며 이어폰 속으로 떼제 피아노 연주곡을 듣고 있으니 기도 시간이 참으로 평화로웠고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앉아 묵주기도를 돌리는 것도 나에게 참 편안했기에 집에 노트북도 놔두고 성당에서 계속 기도하기로 했다.


3교시 영어 시간에는 성당 관리장님께서 초 켜면 안 된다고 하시길래 LED 등이라 안심시켜 드리기도 하고 나도 살짝 졸리길래 내가 졸면 아이도 졸 것만 같아서 잠 깨우며 기도했다. 시험 마치고 혹시 영어 시간에 졸렸냐고 물으니 긴장해서 인지 한 번도 안 졸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가 텔레파시로 자신을 졸리게 할 수는 없다며 얼토당토않다며 웃었다. 4교시 한국사 시간은 십자가의 길을 하며 마무리하고 성당을 나왔다. 5교시 과탐 시간이 한국사 시간보다 더 기도가 간절히 필요했지만 이제 이동하여 아이 학교 앞으로 데리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기 예보에서 5시경 비가 올 거라 해서 아이가 비 맞을 까 봐 가봐야 했다.  내가 수능 볼 때도 끝나고 나오니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하며 그때 생각이 났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낯선 학교에서 얼굴이 홀쭉해진 아이는 무탈하게 교문을 나왔다.

배도 안 아팠고 특이한 사고도 없었며 어려워서 답을 다 적어 나오지는 못했지만 큰일이 아니니 그걸로 되었다며 잘 마친 걸 축하해 주었다.


과탐 끝나고 아이들이 나오지 않자 조금 안쓰러운 생각에 울컥하긴 했지만 꾹 참고 만난 아이와 스마트 폰을 사러 갔다. 19살이 되도록 스마트 폰을 가져본 적 없이 공신 폰으로 살아온 아이였기에 제일 먼저 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초등 5학년 때 자신을 절대 대학 갈 때까지 스마트폰을 가지지 않겠다고 하더니 그 말이 이루어졌다! 물론 지금 대학을 간 건 아니지만 수능을 마쳤으니~^^



채점을 하지 않았기에 내 맘이 너그러웠는지 아니면 채점과 상관없이 큰 여정을 지나온 아이가 기특해서 너그러웠는지 아이가 한없이 사랑스럽고 기특하고 이뻤다. 앞으로 여정 동안 이렇게 사랑스럽고 이쁜 아이로만 바라보자


사랑한다 벼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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