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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 Dec 15. 2022

무와 배추

현실 파악 마무리

고랭지의 무가 유명하다고 하지만, 남쪽과 달리 인맥도 없고 연고도 없다. 어디를 찾아가야 하나 고심하던 차에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송정동과 대기리? 뉴스에서 국내 시세와 유통량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차를 무작정 동쪽으로 몰았다.

강릉 송정동에 도착하였다. 가는 길에 초당에서 짬뽕순두부가 형편없었다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고랭지가 아닌 평지였다. 오히려 차도도 가깝고 주민센터도 있고.. 이건 그냥 평범한 시골 같은데? 주민센터 가서 무와 배추농장이 어딘지 물어봐야 하나? 싶던 찰나 엄청난 규모의 배추밭이 눈에 들어왔다. 관광지로 유명한 초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런 대규모 밭이 있다니 스프링클러가 만드는 무지개 속에 자리한 배추밭들은 절경이었다. 가까이서 보고자 차에서 내려 무작정 걸었다.

강릉 송정동 주민센터 옆의 엄청난 배추밭

날씨가 좋아서일까? 아니면 밭과 혼연일체 된 이 순간이 좋은 걸까? 아무 근심 없는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송정동은 고랭지가 아니다. 이미 여름이 지나고 온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직원분 말씀으론 고랭지의 수확은 아마 끝났을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어서 이동해야 했다. 고랭지 무와 배추가 있다는 대기리로 이동하였다. 고랭지답게 유난히 오르막길이 많았다. 귀가 멍해지고 차의 기름이 평소보다 빠르게 소진됨이 느껴졌다. 그렇게 도착한 대기리. 이미 수확을 끝낸 민둥 밭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번에도 내려서 무작정 걸었다. 송정동과 반대의 양상. 겉대가 시들어 수확하지 않은 배추들도 곳곳에 보였지만 다시 수확의 기회를 볼 수 없음이 확실하듯 흙먼지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무는 아예 보이지조차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꽉 찬 알배추가 보였다. 여기 있는 배추들만으로도 우리 가족 10년을 먹을 김장을 담글 수 있겠군.

하지만 이미 수확이 끝난 것은 저명했다. 근처 큰 창고에 적혀있는 번호에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밭의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쓸 예정인데 시세와 조건을 알 수 있을까요? 지금 계신 곳으로 저희가 이동하겠습니다. 다행히 주인분은 마을 내에 계셨고 조용한 카페에서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전화번호를 찾았던 큰 창고(?)

카페도 같이 운영하고 계시는 아주머니 주인이셨다. 우리의 의중을 눈치라도 채신 듯, 마을 밭 전체를 관리하는 마을회 멤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수하고 명함이 오가고 아 난 명함이 없는데.. 급한 대로 직장 명함이라도 건넸다.

가격 변동성과 어지간한 양으로는 거래가 안된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하였다. 하지만 충분한 양을 거래한다고 하더라고 최소 수량으로 움직이기에 그들에겐 귀찮은(?) 일 일 뿐이다. 대뜸 찾아온 서울 촌놈에게 현실적인 조건과 의견을 주신 사무차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산지와 직접 거래한다면 몇 톤이 아닌 월 몇십 톤은 거래해야 그들이 귀를 기울여 준다. 우리 기준에선 전에 없던 양이라도 그들은 계산 단위조차 틀리다. 뒤에 0이 몇 개가 붙는지 세는 것에 무뎌져 t단위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과 상생하기 위해서는 나의 그릇이 먼저 커져야 함을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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