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삼양 검은 모래해변은 내가 사랑하는 곳이다.
아름다운 제주를 떠올렸을 때, 예쁜 해변은 아니어서 그런지 관광지도 아니라 관광객보다는 도민들이 더 많은 곳이다. 투박한 해변이랄까.
그곳에서 맞이하는 하루, 오전 7시 아침 햇살과 바람이 좋아 발걸음 닿는 데로 무작정 해변으로 나아갔다.
4월 초라서 그런지 아직 일교차가 심해 다소 쌀쌀하고 살짝 스치는 바람이 차갑다.
'바다는 더 차갑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많이들 바지를 걷고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차가워도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서 나의 발걸음은 바다로 나아갔다.
'앗! 차가'
생각처럼 여전히 차가웠지만, 검은 모래 위에 올려진 새하얀 발이 더욱 대조되어 바닷물이 내 발을 덮을 때마다 내 발은 투명하게 빛이 났다.
조금 더 내 몸이 차가워졌으면 했다. 그래서 숨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쉬었다. 내 몸이 좀 더 차가워졌으면 하는 생각은 내가 이 공기, 바람, 바다의 온도와 닮길바래서였다. 그렇게 내가 투명하게 이 자연들과 내가 동화되길 바랐다.
내 시선에 보이는 삼양의 거리를 온전히 눈에 담고서 나는 바닷가 가장자리를 철퍽철퍽하고 걸어갔다.
바다가 차갑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래사장이 더욱 차가워서 바다가 쓸려 내려갈 때마다 너무 추웠다.
어서 바다가 내 발음 따스히 감싸주길 바랐다. 그렇게 차갑게 느껴졌던 바다는 오히려 점점 따스해졌다.
아니, 내가 바다의 온도와 닮아진 것일까.
하염없이 걷다가 어떤 아주머니가 뒤로 걷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보니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뒤로 한번 걸어볼까?'
이내 나도 사람들을 따라 뒤로 걸어보았다.
앞으로 갈 때는 시선이 좁아졌는데, 뒷걸음질 치니 나의 시선은 점점 넓게 보였다.
당연한 이치다. 허나 이 당연한 이치를 안다고 하더라도 몸소 다시 느끼니 더욱 새롭게 다가왔고
같은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보이는 게 너무 신비스러웠다.
나는 같은 풍경을 앞으로 왔다가 뒤로 갔다가, 반대 방향으로 앞으로 왔다가 뒤로 갔다가를 반복하며
그렇게 2시간을 걸었다.
생각이 많은 나에겐 이렇게 가끔씩 또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 내 안에 무언가 채워지면서,
나를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생각이 많아지면 종종 뒤로 걷곤 한다.
그래서 나는 뒷걸음질 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