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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경 Jun 21. 2022

학교 좀 보내주세요...

직업병 걸린 교사의 치유책

  " 선생님, 저 머리 묶어 주세요." 3월 첫날 한 여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묶어 달라고 하였다. '5학년인데 머리를 묶어 달라고 하네...'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친근감의 표현이라 여겼고 나도 잘 보이고 싶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머리를 묶어 주었다. 그런데 매일매일 머리를 묶어 달라고 한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이 아이의 머리를 만져 줘야 하는 상황이 수시로 생겨, "00야, 머리 묶는 법 알아? 혼자 묶는 걸 연습해 보는 게 어떨까?"라고 말하자.."네, 머리 묶는 거 알긴 알아요.."라는 대답을 들으며 머릴 묶어 주는 것으로부터 탈출하였다. 그런데 이 학생이 어느 날부터인가 학교를 띄엄띄엄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때 당시에는 오미크론이 한창 퍼지고 있을 때라 다른 아이들도 코로나19 의심증상으로 학교에 못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고, 이 학생도 이와 같은 증상으로 학교에 안 나오는 경우가 종종 생겨났다. 당연 '오미크론 증상으로 못 나오는구나'라고 여겼고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학교에 못 나올 경우에는 출석 인정을 해주던 때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출석에도 문제가 없었다. 집에서 자가격리에 있거나, 의심 증상으로 출석을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기에, 늘 줌으로 쌍방향 수업도 병행하였는데, 그때 줌에도 띄엄띄엄 들어왔기 때문에 학교 공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앞으로 증상이 나아지고 학교에 돌아오면 괜찮을 거라는 기다림으로 등교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학생에게 오미크론 증상이라는 두통, 인후통 등의 증상이 매일 발생한다는 걸 알았다. 자가 키트나 PCR 검사를 권유하여 받도록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음성이었다. " 어머니, PCR 검사해서 음성이면 학교 보내주세요."라고 등교를 권유하였는데, 그때 어머니에게 돌아오는 답변은 "아이가 학교를 거부하여 보내기가 어렵다. 불안 증세가 있어서 밤에 잠도 잘 못 잔다."는 대답이다.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이제는 정부의 방역 지침도 바뀌어 코로나19 의심증상이어도 출석 인정이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이 아이의 상태가 걱정되었다. 정신건강을 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에 있는 관련 위원회에 이 아이의 지원을 의뢰했고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아이는 외부 상담을 정기적으로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학교의 위클래스에 머물러도 좋으니 일단 학교에 등교를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학부모님과의 면담도 이루어졌다. 아이의 상태 개선과 장래를 위하여 부모로서 이 아이를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 우려되는 부분 등에 대해서도 전달하고, 가정에서 학교에 안 가겠다는 아이를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아이는 학교에 잘 오지 않고 있다. 치통이 있다고, 불안 증세가 있다고 수시로 결석을 하였고, 학교에 나오는 날에는 여전히 위클래스에 있으며 교실 수업은 선택적으로 들어온다. 그래도 학교에 있는 날은 내가 위클래스를 오고 가며(다행히 교실 근처에 있음) 아이의 학습을 챙겼다.

  오늘 아침에 학부모로부터 문자가 왔다. "불안증세로 오늘 학교에 못 가요.~"라고... 물결 표시가 괜스레 심기를 더 건드렸다. 학교에 보내지 않는 학부모의 처세와 나의 무기력함에 화가 났다. 아이가 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 있는데... 정말 그냥 내버려 두고 아이에게 맞춰 주기만 하면 되는지에 대하여 판단이 서지 않았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묻고 싶은 마음이 내 가슴속에서 용솟음쳤다. '부모라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지도하고 설득하여 학교에 보내야 하는 게 맞는 일 아닌가. 아직 초등학생인데.'라는 판단, '어떻게 불안과 스트레스가 저렇게 심해지게 되었을까'라는 의구심,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이 아이는 그대로 방치될 텐데, 앞으로 성장해 나가는데 과연 괜찮을까?'라는 책임감이 다시 밀려왔다.


  교사로서 버티기 어려운 선을 경험한다. 내 감정을 떨쳐내고 판단하지 말 것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겠다고 마음먹어도, 불안정한 아이의 세계를 목도하며 내버려 두는 일은 결고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를 상대하는 직업으로서의 직업병을 나도 치료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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