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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경 Sep 09. 2023

담임교사 기피현상

아이를 키우는 일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함께 하고, 학교에서는 담임이 그 역할의 중심에 있다. 담임을 하는 데는 수업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보살피는 책임과 과업이 동반된다. 수업은 가르치는 본연의 일이므로 교사 일의 가치와 보람을 모두 느끼게 해 준다. 난 수업만 한다면 교사일이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담임은 수업 외에 20명이 넘는 학생의 오전, 오후 일과 및 전반의 생활 관리 케어 등 여러 잡일을 동반한다. 특히 안전과 관련된 문제는 수업 시간보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 등에 발생할 여지가 있어서, 그때도 방심할 수 없고 화장실만 겨우 다녀와 교실 안을 지켜야 한다. 다치지 않게 예의 주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 힘든 것은 아이들의 관계에 대한 생활 지도이다. 여자아이들의 교묘한 감정라인을 읽으며 적절히 대처하고 상담해야 하며, 서로 싸워서 기싸움하고 있는 애들을 화해시켜 주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수업 시간에 배운 갈등 관리는 감정과 기싸움을 하는 여자 아이들에게 그리 쓸모 있는 지식이 되어주진 못한다. 이때는 긴급 처방으로 교사가 개입하여 해결해 주는데 효과가 항상 있는 건 아니다. 친구 관계를 맺는데 유독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레이더망을 상시 켜놓고 아이들의 관계 형성이나 회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한다.


문제는 하나의 단편만을 보거나 내 아이 말만 듣고 학교에 서슴없이 전화하고 민원을 내놓는 학부모로부터 비롯된다. 전체적인 숲도 보고 나무도 보며 한 명 또는 그룹, 전체를 아우르며 최고의 레이더망을 돌리고 있는 담임교사에게 이기심과 자만심의 언어로 '내 아이의 입장'을 말하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내비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아이를 위해 이만큼 한다는 것은 다른 아이의 자리를 그만큼 뺏는 것이다. 평상시 교사는 그 레이더망을 분주히 돌리며 알아서 모든 아이들의 기본권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춘다.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같이 팀을 못 이루어서 우리 아이가 속상해해요. 친한 친구랑 같은 팀에 넣어주세요.", "엄마들끼리 사이가 안 좋으니까 이 아이랑은 놀지 못하게 해 주세요.", 특정 내용에 대하여 교육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말도 안 되는 교육 내용에 대한 협박도 있다.


아이들의 관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싸움을 가지고 담임교사에게 지도를 요청하고 책임을 묻는 경우도 많다. 학교 일과 중에 일어난 일이 아닌 학교 밖 놀이터에서의 싸움, 주말 운동장에서 벌어진 일, 단톡방, SNS에서 오고 간 대화 내용 등을 가지고 담임교사에게 전말을 밝히고 지도하라는 요청을 한다. 학급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몸이 하나인 로봇이 아닌 인간인 담임은 어쩔 수 없이 수업은 뒷전이 된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는 것처럼 본업인 수업은 대충 교과서 갖고 어찌어찌 연명하고, 이 일을 해결하는데 담임은 온 사력을 다하여 힘쓴다. 당연히 이 일과 관련이 없는 학생들에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해진다. 피해라고 하는 것이 맞다. 담임은 한 명인데 담임에게 당장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생겼으니, 학습권과 교육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의 몫이다.

 

이제는 교사를 아동학대로 고발까지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여 법적 분쟁을 준비해야 한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고소에 맞서고 죄가 없음을 밝혀내기 위해, 그 숲을 보며 개인과 집단, 전체를 아우르며 내가 했던 모든 일거수일투족, 레이더망을 가동하며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교사의 전문성으로 간파했던 그 모든 것들을 소명해야 한다. 그 낱낱의 사연은 아이들의 심리처럼 복잡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학부모의 이기심과 수평적 폭력의 발로로서 아동학대라는 무기를 들고 나왔다. 아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한 교사에게 아동학대의 누명을 씌운다는 것은 적반하장과 후안무치일 뿐만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죄행위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무고죄의 형량을 강화하여 반드시 강력 처벌해야 한다.

   

담임교사 수당 13만 원. 13만 원 받고 이렇게 생명을 건 일을 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13만 원은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는 생각이 든다.

담임에게 "감기약 먹여달라.", "모닝콜해 달라" 등등 여러 요구 조건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나는 저학년 맡았을 때 "감기약 먹여달라."라는 말을 들었었고, 고학년 맡았을 때, 9시 넘어서 학교에 오는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선생님이 우리 아이한테 빨리 좀 챙겨서 학교 가라고 해주세요."라는 말을 전달받은 적이 있다. 그땐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함께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다. 내가 좀 더 희생해서 이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애써 이 엄마의 학교 보낸 아이에 대한 걱정과 육아의 고됨을 덜어주겠다는 인류애를 가져본 적도 있다. 도청기를 들려 보내고, 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하는 학부모들을 목도하며, 이제는 안다. 더 이상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일이 아닌 것을...

이제는 사명감과 온정으로 이 일을 지속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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