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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aris Jul 30. 2023

현대 사회의 두 종착지, <1984>와 <멋진 신세계>

    <1984>와 <멋진 신세계>는 동전의 양면 같은 두 가지 디스토피아를 보여주고 있다. 한쪽은 자유가 과도해 방종 수준으로 방치된 쾌락만 가득 찬 생각 없는 세상이며, 다른 한쪽은 자유라고는 고통받을 자유밖에 없는 상하좌우에서 들어오는 억압이 가득한 사회이다. 어느 사회가 더 좋은가 혹은 덜 나쁜가에 대한 토론도 지금 어디에서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겠지만, 결론적으로만 보면 사실 그러한 토의 자체가 무의미하다. 둘 다 비이상적인 디스토피아이며, 양쪽 가능성 모두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즉, 저 두 세계는 인간성의 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손자병법에서도 나왔듯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였듯이, 우리도 저 두 세계가 어떤 맥락에서 예견되었는지 알아야 어떻게 저런 세계에서 살지 않을지 알 수 있다.

    둘 중 먼저 출간된 책은 1930년대에 출판된 <멋진 신세계>이다. 영국인이었던 헉슬리의 당시 시대 분위기를 이해하려면 맬서스의 주장을 빼놓을 수 없다. 맬서스는 “인구 증가는 기하급수적이지만 식량을 비롯한 생존에 필요한 자원은 산술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통제할 수 없는 자원보다는 통제 가능한 인구 증가를 둔화시켜야 한다”라는 이론을 주장했으며, 이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시기가 바로 1930년대이다. 이런 시대에서 살아가던 헉슬리 또한 그의 이론에 영향을 받았다. 멋진 신세계의 멋짐을 유지하는 수단 중 하나가 모든 사람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그 수를 철저히 통제하며 생산하는 방식이다. 10명의 신생아를 유지할 자원이 있는데 15명이 태어나 5명의 아기들이 굶주릴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아기를 낳을 권리를 빼앗고 계획적으로 10명의 아기만 낳는 것이 바로 멋진 신세계의 방식이다.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는 역겨움이 올라오는 묘사이지만, 그런 인간성을 배제한 효율만 따지자면 탁월한 방법임은 확실하다. 아이가 더 태어났을 때 들어갈 추가 예산도 없고, 과도한 인구에 대한 걱정 자체를 제거해 버리니 그 시간에 다른 더 유용한 일들을 할 수 있으니 이토록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현대인으로서 우리는 자주 효율적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와 같은 방법에는 고개를 젓는다. 비슷하게 1970년대 발매된 포드 핀토 승용차의 치명적인 결함을 수리하는 비용이 그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보상해 주는 비용보다 비싸기에 결함 수리를 하지 않음으로 비용적인 효율을 추구한 포드 사의 결정을 보고 효율적일 수는 있으나 합리적 결정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에서는 이는 당연히 그래야만 하고 본받아야 할 모범 사례이다. 즉, 멋진 신세계는 살면서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잡으면 안 되는 이유를 하나의 이야기로 요약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결국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인간을 완벽성이 존재하는 어떤 수치에 맞추려고 하는 행동의 비인간적인 본질에 대한 일침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1984>는 조금 더 늦은, 세계 2차 대전이 막 끝난 1948년에 역시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전쟁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세계는 안도감에 젖어있기도 했지만, 인간의 잔혹성과 부조리함의 극단을 체험하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평화였다. 사람들은 다시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을 약속과 영속적인 평화를 바라고 있었다. <1984>는 이런 희망을 꺾어버리는 내용으로 보일 수 있다. 안정성 아래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았던 전쟁은 오히려 그 안정성을 위한 수단으로 연명하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주입하는 하나의 무기로 오세아니아의 국민들을 겨누고 있다. 당은 시민들이 딱 필수적인 생활만 영위할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생활 수준이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다는 거짓말을 믿도록 하고 있다. 당이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 계속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스트아시아나 유라시아와의 전쟁을 위해서이다. 국민들은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사상을 믿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들은 잔혹하고 추잡한 국가들이며 그들과의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사실만을 믿는다. 심지어는 이스트아시아나 유라시아 중 누구와 전쟁을 하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 적이 있고 전쟁이 있어야만 국민들의 불만 또한 그곳으로 향해야 권력이 유지되며, 그 적이 누구인지는 상관없는 것이다. 마치 냉전 시기 이념 대립이 심각한 곳에서 마음에 안 드는 인물을 상대 진영 소속(미국의 스파이, 공산주의의 앞잡이 등)이라고 몰아가는 것과도 같다. 이념, 신앙, 정치적 입장 등 모든 것을 망라하고 결국 권력을 지닌 자는 적을 만들고 파괴하며 자신의 입지를 살찌우는 포식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오웰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권력은 생명과도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권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지속되는 것을 목표로 해 주변의 모든 것을 소진시킨다. 인간성, 풍요, 자유,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존재 의의인 사람들의 안전마저 희생시켜 스스로를 유지시킨다. 그렇기에 우리는 권력이라는 맹수를 역으로 감시하며 나도 모르게 권력에 목줄이 채워져 있지는 않은지 항상 열린 마음으로 고민하고 필요시에는 그것을 벗어던질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1984>와 <멋진 신세계> 모두 몇십 년 전의 소설이지만, 그 작가들은 마치 미래를 보고 온 시간여행자들처럼 현재에도 유효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헉슬리의 가르침처럼 효율도 좋지만 결국엔 사람을 챙겨야 한다는 경고를, 오웰의 가르침을 받들어 안정성이라는 탈을 쓴 독재를 파악하고 필요시에는 투쟁하고 거부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슴속에 새기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 발전을 날개삼아 세상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격렬하게 바뀌고 있으며, 그 흐름을 기회삼아 오세아니아와 신세계를 꿈꾸는 자들 또한 너무나도 많다. 그들에게 대항할 방법은 총칼이 아닌, 이러한 책에 담긴 지식과 통찰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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