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괜찮아, 안 죽어>는 사람의 삶과 죽음의 최전선에서 분투하던 응급실 의사가 동네 의원의 의사가 되면서 겪은 일들의 단편을 모아둔 책이다. 생명이라는 주제는 무거운 고전 서적에서도 숱하게 다룬 주제이지만 <괜찮아, 안 죽어>는 그것을 훨씬 가벼운 톤으로 풀어나간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이렇게 가벼워도 되나 싶지만, 죽음 또한 삶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이렇게 가벼운 태도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현재 상태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기조가 강한 현대 사회에서 이 사실을 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때 수많은 생명을 붙잡아 두고 그만큼 더 많은 생명을 떠나보낸 응급실 의사이던 저자는 자신만의 담백한 문체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사람은 결국 죽는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저자를 비롯한 의사들과 응급구조사들일 것이다.
이미 웰다잉이 웰빙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은 상식이 된 지 오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잘 죽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한 가지 정답은 없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죽는 방법에도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확실히 존재한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 웰다잉의 오답을 한 가지 들은 것이 있다. 인근 요양원으로 단체 봉사활동을 갔을 때, 필자가 면회실을 청소하면서 엿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부부가 자신들의 아버지를 요양원에 맡겼다. 남자의 아버지던 이 어르신은 자신의 자식을 키우는 것인지, 원수의 아들을 떠맡아 키우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자식을 혹독하게 키웠다. 비교적 잘 살았던 가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바로 막노동을 배워 자신에게 돈을 바치라 강요했고, 그 돈은 온전히 아버지의 술값으로 돌아갔다. 아들은 이 때문에 항해사라는 꿈을 접어야 했다. 보다 못해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집을 나가 결국 어느 은행의 고위급 직원으로 성공해 현재 부인까지 만나 딸을 낳으며 잘 살아갔다. 외동아들이던 이 남자의 아버지는 알콜성 치매로 인해서 경찰로부터 신고를 받기 전까지 연고자가 전혀 없었다. 남편은 아버지와 더 이상 엮이기 싫었지만 부인의 권유로 지난 3년간 그를 요양원에 맡겼었으나, 남편은 이 정도면 됐지 굳이 찾아올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때 요양원을 나오며 남편이 하는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괜찮아, 안 온다고 아버지 더 일찍 안 죽어.”
남편이 매정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치매가 더 악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반대로 자주 찾아온다고 해서 그의 치매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남편의 말도 결국 “괜찮아, 안 죽어” 정신에 충실한 발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한 반박이라면 반박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 말이 더 붙는다. “사람은 다 죽어.” 그렇다. 이 남자의 아버지는 물론, 그 남자, 부인, 요양원 직원,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언젠간 다 죽는다. “괜찮아, 안 죽어”의 의미를 풀어쓰자면 “네가 하고 싶은 건 가능한 최대한 해봐!”라는 희망적인 뜻이 된다. 그러나 위의 아버지 같은 사람은 “어차피 죽으면 다 그만이니까 너 마음대로 살아도 돼.”라는 무책임하게 이 문구를 해석했고, 그 대가로 잘 죽지 못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괜찮아, 안 죽어”라는 말은 물론이고, 책에서 나온 “사람은 다 죽어”라는 말 또한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한, 무슨 짓을 해도 우리는 죽지 않는다. 다행하게도 우리는 남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한다고 해서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는 사회에 살지 않는다. 즉 적당한 정도의 일탈은 “괜찮아, 안 죽어”라는 말로 무마할 수 있는 다행인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면서 그를 위한 노력과 책임을 아끼지 않아야 즐겁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괜찮아, 안 죽어”라는 이름 아래 한 행동은 죽을 때 모두 돌려받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유는 영원하지 않기에, 우리는 그 자유를 최대한 가치 있게 써야 할 것이다.
고대 로마시절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의 마차에는 가장 하위 계급인 노예가 같이 탑승하며, 그에게 ‘메멘토 모리’라는 말을 계속해서 했다고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를 개선장군에게 말하게 한 이유는 바로 교만 떨지 말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소름 돋는 관습이지만, 교만 떨지 말라는 교훈만큼은 배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