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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 Mar 11. 2023

De mea vita

라틴어로 '나의 인생에 대하여'라는 뜻이다.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읽다가 저자가 학생들에게 이 주제로 과제를 내주었다는 부분을 보았다. 생각해 보니 나도 내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이참에 글을 한 번 써 본다.




생각해 보면 항상 무난한 길을 걸었던 것 같다. 도전과 변화보다는 익숙함과 안정을 좋아하는 성격답게 그대로 살아가려 애를 썼다. 조금은 진부할지라도 평화로움에서 태어나는 반복적인 일상을 선호했다. 자연스럽게 정말 친한 소수의 사람들과만 인간관계를 맺었고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취미생활을 할 때면 갈등 없는 잔잔한 독립영화 속 등장인물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연한 듯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고, 중학교,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다. 공부, 운동, 예술 뭐 하나 특출 난 것도 없어 교실에서는 늘 조용하고 말 없는 아이로 통했다. 성적은 중위권 언저리였지만 특성화고를 가지 않은 이유도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어서가 컸다. 보통 특성화고를 가면 19살에 취업도 당연히 그 분야로 하게 되니까. 세무나 회계 쪽이 취업이 잘 된다는 말에 귀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수학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의 적성에는 백 퍼센트 맞는다곤 차마 할 수 없었다. 글을 잘 써서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다른 친구들의 요구에 맞춰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애매한 재능일 뿐이었다. 그림과 글 모두 정식으로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어릴 때부터 학원에 가서 일찌감치 교육을 받은 친구들과는 결과물부터 너무나도 차이가 났음을, 점차 자라면서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교 학과를 정하기까지가 제일 고민되었던 것 같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가고 싶은 학과가 없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조차도 없었고, 이름만 봐서는 도대체 무엇을 배운다는 것인지 알기 힘든 학과명들만 빤히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나름대로 미래 전망과 취업률을 고려해서 보건계열을 택했지만 확신은 전혀 없었다. 어쩌면 나와 맞지 않을 거란 생각도 했다. 그냥 내가 싫어하는 공학계열과 인문계열, 방송계열, 뷰티계열, 교육계열 등을 빼고 나니 남은 게 그거였다. 다행히 운 좋게 1 지망으로 생각했던 대학교에 추가합격으로 입학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년 동안 대학교를 다녀보니 내가 꿈꾸던 캠퍼스라이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1학년 때는 내내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강의와 레포트를 쳐내기만 해도 바빴다. 2학년 때는 학기마다 2개씩 있는 팀플, 자격증 시험들과 면허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점 관리 또한 해야 했다. 중간고사를 끝내면 기말고사가 기다리고, 과제 하나를 끝내면 팀별 발표 마감기한이 날 재촉하고 있었다. 한 마리도 힘든데 여러 마리 토끼를 같이 잡으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성적장학금도 한 번 못 받고 면허시험도 탈락한 채 평범히 졸업을 했다. 지금 돌아보니 동아리나 대외활동을 하나도 해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기도 하다. 교수님들은 자체 휴강 한 번 없던 성실한 학생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나는 내가 생각해도 교과서처럼 매우 따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니 막막함이 밀물처럼 와르르 밀려와서, 나는 남들이 하는 것처럼 취업준비를 엉성하게나마 시작했다. 사실 가고 싶은 회사가 없어 방황했지만 2년 동안 배운 것이라곤 얄팍한 전공지식 밖에 없어서 결국 대부분의 선배들이 갔던 길을 따라 걸었다. 난생처음으로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써보고, 입사지원을 했다가 서류에서 탈락도 해보며 취업준비생이라는 역할을 소화해 나갔다. 부끄럽지만 아르바이트는 21살에 고작 두 달 한 것이 전부였다. 이유는 '간절함이 없어서'라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부모님 명의의 집에 살면서 부모님이 해주는 밥을 먹고, 부모님이 주는 용돈을 받고 사는 것에 익숙했으니까.

사실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면 재수도 하고 휴학도 하고 여행도 하고 편입도 하고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사는 친구들이 많다. 그에 비하면 난 재미없는 삶을 사는 셈이다. 내비게이션에 입력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취업 루트를 경로 이탈 한 번 없이 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게 나쁜 것이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실패를 안 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들과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를 내 발로 뻥 차버리는 거니까.

그래도 요즘에는 버킷리스트를 적고 하나하나 이뤄가는 재미로 산다. 고인 물이다 못해 썩은 물이 되기는 싫다. 무해하고 말랑말랑한 삶은 좋지만 익숙한 것만 하고 살기에는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나도 짧으니까. 뭐든지 최대한 발이라도 담가보고 싶다. 대학교를 가는 것만이 인생의 정답이 아니듯, 졸업 후 취업과 사업만이 정답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앞으로의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머리를 부여잡고 몇 날 며칠을 고뇌해 봐도 여전히 미래는 불안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어디를 가든 내 발이 닿는 곳이 길이고 내 선택이 정답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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