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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Jan 29. 2024

이름 말고, 아는 게 뭐야?

어제는 은연중 걱정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 날이다. 내 몸과 머리에 나를 입증할 아무런 근거가 없을 때, 내 존재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현실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은 간단했다. 점심 먹으러 집에 갔다가 핸드폰과 지갑을 두고 온 거다. 전에도 그런 일은 종종 있었지만, 시작하는 모양은 같은데 일의 전개가 다르다.      


어떻게 된 건지 나와 연관된, 그러니까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전화번호 하나도 기억할 수 없었다. 집 일반전화번호, 아내의 핸드폰 번호, 그 어느 하나도 기억할 수 없다. 사무실에 가면 자료가 있을 것인데 그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갈 키마저 집에 두고 와서 손에 없다….


다시 집에 갔지만 그 또한 허사다. 성주 엄마는 볼 일이 있다고 같이 나와서 헤어졌으니, 집에 있을 리가 없다. 현관문에 있는 번호 키의 비밀번호는 기억할 수 없다.   

  

연락할 곳도 없고 들어갈 곳도 없다. 이건 청천벽력과 같은 난리다. 내가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식구 외에는 흥미도 없을 내 이름뿐이었다.     

 

저녁에 아내와 의논했다. 누구는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서 소원성취했다는데, 나는 손바닥에 집 현관 번호 키의 비밀번호를 문신해야 할 모양이라고····.     


사는 게 자꾸 힘들어진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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