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존재는 애매하다. 그게 존재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지만, 확실하게 존재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은 구석이 있다. 날이 좋아야 바닥에서 머리까지 검은 한 가지 색으로만 존재한다. 또한 발광체인 해의 위치에 따라 사선(斜線)으로, 길거나 혹은 턱도 없이 짧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밤이 되거나 날이 우중충하기만 해도 존재는 흔적마저 사라지게 된다. 황당한 존재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사랑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랑채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한 집에서 한 해에 한 명만 출산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석 달 전에 작은어머니가 안채에서 해산하셨다. 우리 어머니가 큰며느리였음에도 나는 사랑채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 풍습이 그러했으니 딱히 억울할 일은 아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우연히 나보다 겨우 석 달이 빠른 내 사촌 형이 호적에는 일 년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 별생각 없이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께서는 한참을 머뭇거리시더니 말씀하셨다.
“너를 나 놓고 보니 몸이 약해서 도저히 살 것 같지 않더구나.”
꼼지락거리긴 하는데 살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는 약골이었다는 뜻이다. 내 위로 누나 한 분도 낳은 지 얼마 후에 잃었던 아픔도 있었다고도 하셨다.
살 것 같지 않아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내게 참담한 상처로 남았다. 그러기야 했겠냐만, 어른들은 일 년 내내 내가 죽기만 기다렸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죽지 않고 살아난 나는 내 동갑들보다 한 해 빨리 학교에 갔다. 그러면 계산이 어떻게 되지? 호적이 일 년 늦은 애가 학교에는 한 해 빨리 갔다면 그 차이가 어떻게 계산되는 거야?
그 의미를 학교 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다. 지금도 궁금한 건 그 어린 나를 왜 그리 일찍 학교에 보냈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때는 중학생만 되면 상급생에게 깍듯이 거수경례하던 시절이었다. 또, 그 시절에는 학교를 한두 해 늦게 보내는 일이 흔했다. 아마 통학 거리가 멀어서 어린아이를 일찍 학교에 보내기 안쓰러웠을 수도 있었겠다. 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두 살은 당연하고, 심하면 네다섯 살이 많은 동창이 많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동창인데도 나보다 네 살이나 많은 사촌 형하고 친구인 경우도 있었다. 그쪽에서는 “야 임마, 우린 동창인데 나이 차이가 뭐가 그리 중요해!” 하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나는 자신을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성격이라 생각한다. 살아온 내내 쭈뼛쭈뼛하며 내딛지 못한 채 이 나이를 먹었다. 천성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어린 내가 나이 많은 형들 틈새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나를 그렇게 성장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고 짐작할 뿐이다.
잘 되면 모두 다 내가 똑똑함이고, 못된 것은 다 조상 탓으로 돌리는 그런 성향을 생각하더라도 나는 좀 억울할 때가 많다. 내게 결정적인 순간이 다르게 작동했더라면 조금은 의젓하고 조금은 호탕한 그런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타고난 운명이란 묘한 것이다. 어린 내가 시작한 첫걸음은 해가 중천에 떠 있던 중이어서 그림자는 너무 짧아서 눈을 부라리더라도 전혀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억울하고 서운한 일이다.
2024.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