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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Sep 18. 2024

추석 소회

어떻게 보내던 우리에게 추석이란 설과 함께 아직은 커다란 의미가 있는 명절이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와 나이를 먹고 막 가정을 꾸렸을 때, 그리고 옹색한 가정에서 자식을 낳아 기르던 때, 그 자식들을 모두 짝을 맺어서 그들의 자식들까지 모아서 맞는 명절은 다 같을 수가 없다.


온 식구가 다 모이기를 기다려서 아침을 먹고 나니 10시가 넘었다. 집이 적은 편은 아닌데 아이들이 눕기 시작하자 내 있을 곳이 마땅치 않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배가 부르자 아무 데나 비스듬히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고개를 누이면 잠을 자는 게 된다.

어제저녁부터 치르는 이런 행사가 내게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다. 며느리들이 어제 종일 음식을 장만하고 날이 저물자 우루루 몰려온 남은 식구들이 함께 먹고 헤어져 각자의 집에서 자고 아침에 다시 모이는 것이어서 더 분답다. 아침을 먹고 처가가 가까운 둘째네만 가고 나머지는 남아 있을 것이다. 이게 명절이 아닌지 모르겠다.


가방을 챙겨서 사무실에 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로 누웠다. 항상 조용한 곳에 있던 버릇이라 단 하루라 할지라도 북덕거리는 건 견디기 어려웠던 거다. 자고 일어나니 12시가 넘었다. 점심? 아침을 늦게 먹어서 그런지 생각이 없다.


학교에 다니다, 가방에 입던 옷가지 몇을 챙겨서 떠나온 해남이, 내가 낮으나 단단하던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밀려나는 풍랑의 시작이었다. 그런 내가, 우리 내외를 포함한 식구가 14명이라는 지금을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이룬 것은 없지만 신세를 한탄하지는 않고 지낸다. 그럼 된 것 아닌가?

원래 부자였던 사람은 쏘나타를 타다 그랜저를 타도 심드렁하지만, 남의 문전을 기웃거리던 사람은 남에게 손 내밀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행복한 것이라고 감사하게 되는 것과 같다.


나는 이 나이를 먹었어도 내 고향인 해남을 잘 찾지 않는다. 내가 자진해서 아물지 않은 딱지를 떼어 낼 이유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202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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