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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Oct 02. 2024

잇새

노인 문제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자꾸 미뤄진다. 다른 일이 바빠서 그런 건 아니다. 노인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면 왜 그런지 딱딱한 벽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콱 막하는 기분이다. 처음에 생각할 때는 내가 당사자인 노인이기에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막상 쓸려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자료도 충분하게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아놓은 그런 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왜 그럴까? 근본부터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 그냥 보통 이야기하듯이 나 혹은 내 주위에 있는 이른바 나이 드신 분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적어 나갔으면 할 것을, 어떤 이념적인 걸 더하려 억지를 부렸던 것 같다. 때깔 나는 글을 쓰려다 밥상까지 엎어버린 꼴이다.     


요 며칠은 울적한 날의 연속이다. 우선은 날씨부터 마음을 다잡을 수 없게 한다. 9월을 다 보냈는데도 가을은 아직도 한참 멀리서 딴짓만 하고 있다. 그러다 은근슬쩍 가을을 뛰어넘고 바로 겨울로 직행하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내게는 그런 황당한 기억들이 많다. 

내게 전쟁의 참담한 기억은 없지만, 전쟁 끝의 흔적이 너무 선명해서 그 트라우마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 내 자란 곳이 최남단인 해남이지만 까만 병사들이 타고 가는 트리 쿼터를 무작정 쫓아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학교에 처음 가서는 나눠주는 강냉이 가루를 받기 위해 책을 쌌던 보자기를 사용했었다. 책은 옆구리에 끼고 그 보자기에다 강냉이 가루를 싸서 그걸 할머니 앞에 자랑스럽게 내려놓던 내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안쓰럽다.    

  

내가 1949년생이니 전쟁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전쟁을 겪은 건 분명하다. 자란 곳이 전남 해남이니, 포격에 박살 난 폐허를 보지는 못했지만, 한 반에 대여섯 명씩 섞여 있는 고아들하고는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했다. 3, 15 부정선거를 알고 4.19도 알고, 5·16쿠데타도 안다. 선배들은 몸으로 부대꼈지만, 우리 같은 무리도 고통은 같이했다.    

  

어디선가 ‘잇새’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이(齒)와 이 사이를 말한다. 당당하고 단단한 양쪽의 이 사이에는 항상 찌꺼기로 그득하다. 잇새에서 보면 이(齒)는 얼마나 우람하고 찬연(燦然)한가!

이와 잇새는 항상 같은 현장(現場)에 있다. 그게 항상 가슴에 비수로 작동하는 것을 느꼈다. 억지를 부리자면, 그 차이는 넓고 깊은 것만도 아닌 그래, 간발(間髮)의 차이밖에 아닐 수도 있겠다. 항상 그게 아쉬웠다.    


 

2024.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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