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생활 중에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으라면 불어 공부도, 소매치기를 세 번이나 당한 일도, 아르바이트도 아니다. 이사다.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도 많았는데, 왜 그렇게 무식하게 이사를 했는지 모르겠다. 경험도 없고, 뭣도 모르고, 열정만 넘쳤던 20대라서 그랬을까.
프랑스에서의 첫 이사는 낭시에서 파리로 가는 거였다.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이삿짐 센터에 전화해 용달 하나를 수배했겠지만, 여긴 인건비가 어마무시하게 비싼 프랑스다. 유럽은 사람의 용역, 서비스가 들어가는 일은 무조건 비싸다. 미용실도 비싸고, 보일러 수리공 한번 부르는 일도 비싸고, 알바 시급도 높다.
그래서 가난한 유학생인 J와 나는 호기롭게 우리가 직접 옮기는 방법을 택했다(까짓것 해보지 뭐. 남아도는 게 힘이잖아!). 낭시에서 파리까지 직접?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방법인데 당시에는 그게 최선인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 부칠 수 있는 짐은 택배로 부친다. 그다음 우리가 가져온 거대한 이민 가방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짐을 욱여넣는다. 기차역까지 이민 가방을 끌고 간다. 매표소 앞 긴 줄 끝에 서서 우리 차례가 오길 목을 빼고 기다린다. 수상한 눈빛으로(시체라도 옮기는 건 아니겠지, 이런 눈빛) 우리를 째려보는 매표원과 몇 초간 눈싸움을 한 뒤 파리행 기차표를 겨우 얻어낸다. 뚱뚱한 역무원 아주머니의 감시 속에 가방을 낑낑거리며 들고 기차에 올라탄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그만큼 가깝다). 북역 앞에 쭉 늘어선 택시 기사들의 호객 행위에 마음이 흔들리지만, 우리는 가난한 유학생이라는 우리의 신분을 망각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가 우리를 잡을까 봐 지하철 표지판이 보이자마자 가방을 던지고 계단을 구른다. 1시간여를 좁은 지하철에 가방과 함께 구겨져 있다 목적지에 도착한다. 동네방네 이사 소문을 내듯 거대한 캐리어 소리를 내며 우리집에 도착한다.
실로 간단(?)해 보이는 플랜이지만, 사실 돈을 아끼는 거 말고는 좋은점이라고는 1도 없는, 그야말로 생고생 이사였다. 유럽은 학생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반값에 기차표를 살 수 있었고, 다행히 파리와 낭시 간 거리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출발해 밤까지 이 짓을 두 번이나 했다. 한 번으로는 짐을 다 옮길 수 없어서 파리와 낭시를 두 번이나 왕복해야 했던 거다. 이사 들어가기로 한 날이 며칠 더 남아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짐만 옮기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싶다. 여자애 둘이서 어마무시한 이민 가방을 끌고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진다. 타국에서 살아 남아야한다는 강박이 초능력을 불렀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이사 후에 우리는 팔과 다리뿐 아니라 마음도 더 단단해졌다.
그 뒤에도 자주 이사를 했다. 파리에서의 첫 집도 급하게 구하느라 단기로 계약한 거였고, 파리에 올라오자마자 J와 함께 다시 방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했다(J와는 한동안 같이 살았다). 마리와 에밀리가 사는 그 집으로 들어간 게 이쯤이다. 다시는 이런 이사는 안 할테다, 결심까지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던 우리는 다시 이민 가방을 이고 지고 지하철역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지하철역 계단 앞에서 암담해하고 있을 때마다 매너 좋은 남자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도와줬다는 것. 무심(?)한 한국 사람들과 달리, 프랑스인들은 그런 오지랖은 있었다. 참 고마운 오지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