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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an 10. 2023

서울 나들이

서울을 다녀와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도 좀처럼 탈 일이 없는 KTX까지 타고서. 친구의 혼사가 일요일 열두 시여서, 새벽 열차를 타고 출발을 해야만 했다. 아직은 몸이 완전하게 회복되질 않아 가능하면 바깥나들이를 조심해야 했지만, 이번 친구의 혼사만큼은 어디에서 하꼭 참석하고 싶었다. 한번 몸이 크게 아프고 나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맺어놓은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서울 나들이를 할 땐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서영춘의 '서울구경'이 바로 그것이다.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노랫말 속에 익살과 해학(諧謔)을 잔뜩 담고 있어 생각만 해도 절로 흥이 난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랬다. KTX 역사에 도착해서, 주체 못 할 마음속 설렘을 먼저 화장실부터 들리는 일로 달래었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하는 기차여행이기도 했거니와, 하루 전에 포항을 떠나 서울을 여행 중인 포항 친구들과 얼른 류(合流)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전날 친구들 부부와 함께 떠나기로 했었지만, 온전치 못한 몸으로 찬바람 맞으며 긴 시간 돌아다닐 자신이 없었기에 부득불 일정을 급하게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다 못 해서 그렇지 정말 생사(生死)의 고비를 넘나든 두어 달이었다. 달리는 열차 속에서 차창밖을 바라보니 산과 들판에 잔설(殘雪)이 분분(紛紛)했다. 서울이 가까워진 것이다. 병실에서 가을을 고스란히 보내고 퇴원을 하니 이미 겨울의 초입(初入)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중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폭설이 내린다고 야단들이었다. 그러고선 또 달포 가까이 지난 게 바로 오늘이다. 마치 눈 내린 세상을 처음 본 아이의 심정처럼 가슴이 콩닥이며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가 어느새 바로 지척(咫尺)에 이르러 있었다.


서울 역사(驛舍)를 나와서 눈앞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니 노래하는 서영춘의 심정과 다를 바 없다. 바야흐로, 시골영감의 마음 설레는 서울구경이 바로 시작된 것이다. 택시를 타고 결혼식이 열리는 웨스틴 조선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열 시 반 경이었는데,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주변을 둘러볼 시간이 넉넉했다. 호텔 바로 옆으로는 사진으로 눈에 익은 환구단(圜丘壇)과 세 개의 석고(石鼓) 자리 잡고 있어 곧장 눈길을 끌었다. 환구단은 고종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으니, 세 개의 석고 역시 제사에 필요한 석물(石物)임이 분명했다. 어떻게 보면, 나날이 쇠락(衰落)을 거듭하고 있던 왕조(王朝)를 대신해서 대한제국의 새로운 탄생을 대내외에 선포(宣布)하고자 고종이 환구단을 만들었으나, 이내 이어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고락(苦樂)을 같이 했으니 슬픈 역사를 지닌 곳으로도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일제가 환구단 본 터를 허물고 그곳에다 철도호텔을 지었다가 이후 1960년대에 조선호텔로 재건축되어 현재의 웨스틴 조선호텔에 이르렀다고 한다.


혼주(婚主)인 친구 S는 의사이고 신부인 딸은 변호사이다. 사돈 되는 분은 금융 계통에서 일하다가 은퇴를 했다는데, 사위될 사람이 피부가 의사이니 오늘의 혼사는 가히 재원(才媛)이라 내세울 만한 딸이 만장(滿場)한 하객들 앞에서 가약(佳約)을 맺는 뜻깊은 자리인 것이다. 하객(賀客)들 가운데는 고등학교 동기들 몇몇도 눈에 띄었는데 모두가 의사인 친구들이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서, 대구에서 개업하고 있는 친구 K의 부인을 40여 년 만에 다시 만나는 우연이 겹쳤다. 복학을 앞두고 대구 중심가에 있는 영어회화 학원을 다닐 때, 당시 K와 연애 중이던 친구 부인은 나와 같은 반이었다. 이를테면, 'Do you have a boy friend?' 따위의 어쭙잖은 말로 신상털이를 시작해 곧장 그녀의 남자친구 이름까지 털고 보니 공교롭게도 그 녀석은 나와는 고등학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다. 그런데, 오히려 이날부터 남녀 사이의 껄끄러움이 사라져 두어 달 후 학원을 그만둘 때까지 서로 스스럼없이 지냈던 기억이 난. 그 후 그녀가 간호사로 해외에서 일하다가 몇 해 후 돌아와서는 결국 친구와 결혼까지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두 사람의 앞날에 거칠 것 없는 창창(蒼蒼)한 삶이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축원(祝願)해 주었다.


혼주의 친구서울 사는 H도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치과의사인 는 나와 걷기 모임을 함께하고 있는 친구사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호텔에서 올리결혼식이었기에 테이블이 하객 이름으로 미리 지정 예약이 되어 있어서 이를 모르고 통보도 없이 온 그의 자리가 비어있을 리 만무했다. 물론 S의 혼사를 축하하러 온 것이긴 해도, 아프다던 친구가 서울로 온다는 뜻밖의 기별(奇別) 들은 H가 겸사겸사해서 일부러 시간을 것이다. 그 심정을 잘 알기에 마음속으로는 난감(難堪)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 식장을 떠나며 보낸 H의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하고는 마음이 무척 무거웠지만, 평소 S와 H가 키 큰 ○○, 키 작은 ○○으로 스스럼없이 부르 친한 사이였 떠올리자 걱정스러운 마음이 적으나마 수그러들었다.


결혼식은 호텔에서 치르는 행사답게 성대(盛大)했다. 양가(兩家) 혼주의 포근한 울타리 안에서, 꽃처럼 예쁘게 자란 신부와 부끄러움은 많지만 의젓하게 성장한 신랑이 많은 하객들의 축복 속에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자리는 언제 보아도 마음이 즐겁다. 오늘의 결혼식이 특히 그러했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잘 자란 자식들이 서로 부족함이 없는 배우자를 만나 부모님들이 지금껏 키워준 은혜에 보답을 했다. 정말 기쁘고도 행복이 넘치는 자리이다. 식후(式後) 행사로 하객들은 신랑, 신부를 화제 삼아 서로 담소(談笑)나누면서 맛있는 스테이크와 함께 향기로운 포도주를 맘껏 즐겼다. 어릴 적부터 보아온 신부가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로 인사를 올 땐 마치 멀리 떠나 있던 딸아이가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온 듯 가슴이 뭉클했다. 하객들이 하나, 둘 떠나고 테이블이 거진 다 비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혼주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호텔을 나서니 시간이 벌써 두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원래 계획은 덕수궁을 둘러보고 포항으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잘못 접어든 길이 명동 쪽이었다. 코끝을 어지럽히는 좌판의 갖가지 달콤 매콤한 길거리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면서 넘쳐나는 인파(人波)를 헤쳐가다 보니 명동성당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돌계단에 층층이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오던 길을 되돌아 다시 덕수궁으로 향했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곁을 쳐간 적은 있었서도 궁(宮內)를 둘러본 것은 일행 대부분이 처음이었다. 심한 미세 먼지인해 시계(視界)가 많이 흐렸지만, 날이 완연히 풀려서인지 궁내를 구경 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덕수궁 안 현대미술관에서는 화가이자 조각가인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 회고전(回顧展)이 열려 그의 대표작들이 오는 1월 말까지 전시되고 있는데, 각 전시실의 안내와 도록(圖錄)살펴보니 잘은 모르겠지만 당대(當代)의 한국 미술계를 대표할 만큼 역량(力量)이 대단한 작가임이 분명했다. 시간이 촉박(促迫)해서 충분한 여유를 갖고 작품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감상할 수 없음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서울역으로 갈 때는 일행 모두가 지하철을 탔다. 포항서만 늘 만나던 친구들이 각자 아내를 동반(同伴)하고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이동하는 모습이 너무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기쁨이란 이런 낯섦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서울역에 도착해 보니 역내(驛內)는 서울을 떠나 각자의 보금자리로 향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심지어는 구내(構內) 상가 안에서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설을 앞두고 이처럼 밀집(密集)된 환경 속에 사람들이 많이 노출될수록 이전처럼 코로나가 다시 극성을 부리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가 되었다.


포항에 도착하니 8시가 살짝 지나있었다. 아침에 포항을 출발할 때는, 새벽어둠이 걷히고 날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지만 해가 돋고 나서도 한참 동안 날씨가 우중충했다. 황사로 인한 현상이라지만 차창밖으로 비친 풍경은 마치 물안개가 피어있는 듯 멀리 보이는 산과 들이 온통 흐려 보였다. 능선(稜線)의 아래위를 이루는 윤곽(輪廓)이 부드러우면서도 뿌옇기만 한 것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했었다. 포항 역사 밖은 이미 밤이 깊어 어두웠고, 서울역을 출발하던 당시 날씨보다도 훨씬 차가우면서 바람마저 세찼다. 함께 저녁을 먹으려던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고 집으로 돌아오니, 갑자기 맥이 풀리면서 졸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한 달 가까운 입원과 두 달 여의 회복기를 거쳐 몸이 제자리를 되찾을 때까지 무턱대고 기다릴 수 없어 나선 길이었지만, 하루의 일정으로 소화하기엔 이번 여행이 평소의 나였다 하더라도 벅찼을 게 틀림이 없다. 하지만 친구의 혼사를 축하하는 자리에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고등학교 동기들이 아내 각자 동반해서 한 여행이었기에 더욱 뜻이 깊었다.


포스코에서, 퇴직 후 프로그램으로 1년을 더 일을 한 친구 둘을 마지막으로 이제 포항 동기들은 모두 일선에서 물러섰다. 그만큼 함께 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아울러, 나를 포함해서 자식들 혼사와 같은 중대사(重大事)를 눈앞에 두고 있는 친구들이 많으니 든든한 믿음으로 서로 의지할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한 번 크게 몸을 상하고 보니, 우선 나부터라도 먼저 건강을 돌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친구들에게 심려(心慮)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굳게 다짐을 하자, 한 달 가까이부터 다져 온 양쪽 종아리 근육에 힘이 붙으면서 불끈 달아오른다. 정말 기분 좋은 저녁이다.


환구단(圜丘壇)의 석고(石鼓)
덕수궁 궁내(宮內) 풍경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서영춘의 서울구경》

https://youtu.be/6Vluct0mM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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