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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an 11. 2023

 포토 에세이 둘

 소리 I 새

이 포토 에세이는 다른 곳에서 관리하던 블로그에서 옮겨 온 것으로, 이곳 브런치에다 지난 글을 함께 모아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며칠 동안 바닷가를 산책하며 '변화'에 대해 성찰을 했습니다. 작년 말, 크게 몸이 한 번 아프고 나서 새로운 감회로 찾은 2023년의 바닷가는, 얼핏 보기에는 예년의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는 게 없었지만, 현재의 내가 작년과 크게 달라져 있듯,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수많은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진과 글을 함께 묶어 영일만 바닷가 풍경을 소개합니다.

1. 소리

바닷가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슬그머니 다가온 파도가 마지막 안간힘을 다 해 데트라포트에서 한바탕 거센 소용돌이 물보라가 일으키, 주위의 자잘한 소음들이 일순간에 씻기우며 사방이 고요해졌습니다. 망아(忘我)의 무아지경에 빠진 채로, 길고 길었던 걸음으로 인해 누적된 발의 피로조차 잊고 있었던 나는, 문득 바다 위를 홀로 떠도외딴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그곳에 있지만 의식해서 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고 마는, 그래서 문득 생각이 굽이굽이 돌아온 길을 돌아볼 때면 섬은 이미 걸어온 길만큼 저 멀리 훌쩍 물러나 있곤 합니다. 지나쳐고빗길 위의 나 역시도 멀찌감치 멀어진 그림자에 더 이상의 미련을 두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맵짜면서도 나른한 그림자 하나가 줄곧 뒤를 따르며 갈 길을 보챕니다. 바다 위서 반사된 햇살이 푸르게 날 선 가시처럼 날카롭게 온몸의 감각을 들쑤시고, 텅 빈 하늘에선 느닷없이 끼룩이는 물새  들리더니 사방의 자잘한 소음들이 한꺼번에 깨어나 물밀듯 귓가로 몰려옵니다. 저 멀리 까마득한 하늘 위로 무리 지어 날던 새들이 어느새 해안 기슭까지 다가와선 은빛 바다 위에 점점(點點)이 박혀 여유로운 잠영(潛泳)을 시작하고, 어느덧 일상적으로 보아오던 바닷가 풍경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바닷길과 산의 능선을 이어놓은, 데크로 만든 나무계단을 오르자 영일만이 한눈에 쏙 들어옵니다. 한쪽으로 살짝 비켜 선 곳에선, 그저께도 보았던 내 나이 또래의 여인이 오늘도 한 손에 성경(聖經) 아니면 시집인 듯한 노란색 겉표지의 작은 책자를 들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낭송(朗誦)하고 있는데, 가 되지 않는다면 가까이 다가가서 당장 물어보고 싶을 만큼 책의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곁눈질하며 지나쳐 가는 찰나에, 멀리서 역광으로 비친 여인의 실루엣이 눈을 아리도록 해맑아 보인 것은, 그저 동년배동질감에서 비롯된 감성적 착각 탓만이었을까요?


능선에서 곧장 이어진 길은 경사가 급한 내리막 고갯길입니다. 옛날이야기 속에나 나올 법한 고즈넉이 구부진 길인데, 깊숙이 보이는 대숲 속에는 도깨비나 호랑이가 몰래 도사리고 있다가 금세라도 뛰쳐나올 듯,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가꾸다만 대나무 숲 한쪽에는 오랜 세월 사람의 손을 벗어나 있었던 듯 잔뜩 짙푸른 이끼가 낀 우물이 얕은 깊이에서 메말라 있고, 그 아래쪽의 농막(農幕)에는 한 철 농사를 마무리한 흔적들이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바닷길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걷습니다. 이틀 전, 데트라포트 위로 누군가가 올려놓은 몽돌을 사진으로 담았더니 수석(壽石) 전시회에서나 봄직한 나름 재미있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잔뜩 기대를 걷고 바닷가에 이르렀는데, 데트라포트 위 몽돌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남아있는 몇 개를 사진에 담고 나니, 좀 전 고갯길을 내려오며 길섶으로 뿌리가 돌출되어 있는 소나무 몇 그루를 미리 사진으로 찍어 둔 것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돌아가는 길로 오솔길을 택해서 야트막한 구릉(丘陵)을 오르니 흰색 등대바로 눈앞에 보입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길을 서두는데 마치 오래된 시골집의 빗장문을 열어젖힐 때 나는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는데 마침 한차례 세찬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눈앞에는, 올곧게 자란 소나무의 허리춤으로 다른 나무의 썩은 가지가 주변의 잔 가지 위로 얽혀있고, 바람이 불면 서로의 마찰로 인해 다소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나는데, 어쩔 수 없는 부대낌으로 껍질까지 벗겨진 소나무의 속살이 마치 생살 도려낸 상처를 보는 듯하여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오늘 산책길에는 많은 소리를 만나고 들었습니다.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소리, 물새의 호젓한 울음과 산새들의 수다스러운 지저귐, 나뭇잎이 서걱대는 소리, 대숲 사이로 들리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자국 소리, 산을 타고 멀리서 들려오는 쇳소리의 공사장 기계음(機械音)까지, 심지어 고요함이 주는 마음의 평온(平穩) 마저도 그 울림을 느끼고 들을 수 있는 듯했습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면서 오늘 내가 낚아 온 사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봅니다. 이번에 다녀온 길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이미 걸었던 길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걸을 때마다 달랐을 나의 오만가지 생각들인데, 이전에 글로 남긴 적이 없었으니 이미 흘려버린 지난 생각을 돌이켜 볼 방도(方道) 없습니다. 단지 컴퓨터에 저장해 둔 이전 사진을 보며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오늘 찍은 과 대상이 같은 몇 장의 사진들 뿐인데, 사진을 찍을 당시의 생각이 과연 오늘같았을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글을 끝맺음하자니, 요즘 일상(日常) 생활이 너무 판박이입니다. 그런데 그 판박이 같은 일상 속에서도 어제 사진과 오늘 사진 속 생각이 서로 다르듯 하루하루가 다르고, 그래서 어제와 다른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나 않을까 봐 조바심이 났습니다.


오늘은, 닷길 산책에서 만나고 들은 갖가지 소리와 이와 맛깔나게 버무려진 마음속 생각들이 공명(共鳴)해서 종일토록 가슴이 진탕(震盪) 색다른 경험을 한 하루였습니다.



2. 새 

오늘은 미세 먼지 농도(濃度)가 무척 나쁘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던 터라, 미리 두툼한 방한용(防寒用) 넥워머를 마스크 위에 두르고 단단히 준비를 한 채 길을 나섰습니다. 물안개가 낀 듯 자욱한 미세 먼지로 인해 멀리 보이는 포스코가 흐릿하게 바다에 잠겨 있는 것이, 아래위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보여 마치 사막 위의 신기루(蜃氣樓)를 보는 듯했습니다. 날이 흐린 데다 시계(視界)마저 분명하지 않아 처음에는 바다 위에서 불어온 바람을 따라 술렁대는 해무 때문이 아닐까 하여 하늘을 살펴보니, 잿빛 허공에는 광채 잃은 태양이 그 언저리를 은빛으로 물들이며 흡사 기력(氣力)을 다한 촛농처럼 사방으로 그 흔적을 흘리고 있습니다. 물고기 비늘 같은 잔잔한 물결이 파도를 타고 기슭까지 밀려와 잘게 부서지더니 이내 썰물에 몸을 싣고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날이 풀려서 그런지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벌써 비니(beany) 쓴 머리로 촉촉이 땀이 배고, 장갑 낀 손은 부대끼는 열기로 근질거립니다. 환호공원의 산 모퉁이를 끼고 크게 돌아가는 바닷길을 따라 잠시 걷는데, 데트라포트 너머로 보이는 몇몇 암초가 파도에 쓸려 온 잔 물결을 희롱(戱弄)하며 바다 위에 도드라져 있습니다. 그런데 암초마다 갈매기들이 제각각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마침 오늘 휴일을 맞아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모처럼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과 다름없는 것 같아 신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며 여객선 선착장이 있는 등대에 이르니, 바다를 면(面)한 데트라포트 아래쪽 아슬아슬하게 돌출(突出)된 암초 위에는, 흡사 두루미처럼 생긴 물새 한 마리가 멀리 수평선(水平線)을 바라보며 기다란 고개를 주억거리며 서 있습니다. 오늘은 희한하게도 갖가지 바다새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데, 이는 여러 번의 산책길에서도 겪어 보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입니다.


사실, 나에게 있어 새는 그리움입니다. 나의 기억이 가장 멀리 미치는 곳엔 어김없이 새가 있는데, 바로 까치의 울음으로부터 내 유년(幼年)의 기억이 시작됩니다. 스무 살 안팎의 이른 나이로 혼례를 치렀던 부모님은, 어머니가 수태(受胎) 후에 짧은 신혼살이를 거쳐 나를 출산(出産)한 지 얼마 되지 않을 즈음, 군역(軍役)을 위해 아버지가 징집이 되셨다 합니다. 새색시와 다를 바 없었던 어머니의 길고 긴 36개월의 독수공방(獨守空房)이 바야흐로 그때부터 시작이 된 것이지요.


한창 가을이 깊어가는 때였던 것으로 기억이 니다. 툇마루를 내려서서 마당을 가로지르면 담벼락을 뒤편에 두고 제법 큰 대추나무 두 그루가 가지를 담 너머까지 뻗은 채 나란히 서 있었는데, 굵은 대추가 성글게 열려있는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까치 울음 들릴 때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나를 안고 마루로 나오시곤 했습니다. 어머니의 성화로 마치 주문을 외듯, "까치야, 까치야! 군인 간 울 아부지 언제 오노?"라고 나지막이 읊조리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품속으로 꼭 안아주시곤 했습니다. 어머니의 살 냄새가 은은히 풍기는 품 속은 늘 따뜻하고 아늑하여, 더러는 내 목덜미로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어머니의 까닭 모를 눈물마저 모른 척 지나치곤 했습니다.


지금도 신기한 것은, 까치가 요란스레 울던 날 오후가 되면 멀리서부터 자욱이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자전거를 탄 우편배달부가 편지를 배달하러 오곤 했는데, 낭랑한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어주던 나어린 고모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나를 동생처럼 아껴주던 막내 고모는, 대구로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로 몹쓸 병에 걸려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맙니다.


등대를 돌아서 나오니, 데트라포트 위의 물새 한 마리가 후줄근한 기색으로 주변연신 두리번거리다가 낯선 시선을 의식했음인지 곧장 날개를 펴서 바다 위를 스치듯 날더니 이내 허공으로 솟구쳐 시야 멀리로 사라집니다. 두루미처럼 생긴 물새는 여전히 자기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누구를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인지 긴  빼들고 아득한 수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환호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스페이스 워크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얼핏 보아도 천명도 훌쩍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앞뒤 거리를 두지 않고 촘촘히 서 있는데, 이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혹시 모를 감염심히 우려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을 한자리로 불러 모으는 이름난 명소가 집 가까이 있어 뿌듯한 마음이지만, 오늘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실물 체험을 마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등산로의 샛길을 따라 휘적휘적 내려가는데, 산비둘기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소스라치듯 옆을 날아오릅니다.


미세 먼지 걷힌 하늘이 부끄럼을 타는 듯 멀찌감치 먼 하늘로부터 조금씩 해맑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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