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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an 20. 2023

영우야, 이놈 영우야

이 글은 다른 곳에서 관리하던 블로그로부터 옮겨 온 글로, 이곳 브런치에 지난 글과 함께 모아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설을 며칠 앞두고 있으니, 기회가 닿으면 고향을 다니러 온 제자들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이맘땐 대구로 가서 설을 보내야 했기에 전화로 서로 안부만 묻고 아쉬움을 달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묻어온 한 제자에 관한 믿기지 않은 안타까운 소식은 생각만 해도 여전히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등학교의 초임교사로 부임(赴任)해 멋모르고 한 해를 보내고 나서, 그 이듬해부터 새로운 학년의 담임을 맡아 아이들과 정신없이 3년간 고락(苦樂)을 함께 한 뒤 첫 대입 학력고사를 치르고 난 후의 일입니다. 정말이지, 진검승부(眞劍勝負)라 할 수 있는 선지원 후시험의 전기대학 입시 전형(銓衡)을 마치고 나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린 대학별 합격자 발표까지 모두 끝나고, 겨울방학이 막 시작된 12월 24일이었습니다. 이날까지 확인된 입시 결과를 정리해서 학교에 중간보고를 하고 난 후 대구 본가로 출발하려고 하숙집을 나서려던 순간,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우리 반 아이 둘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평소, 성수와 영우는 나무랄 데 없이 모범적이고도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학급서기였던 성수와 기억은 뚜렷하진 않지만 아마 학습부원으로서 학급의 면학분위기를 돋우는데 묵묵히 소임다해왔을 영우는, 전기대학 입시에서 안타깝게도 둘 다 불합격의 고배(苦杯)를 들고 말았습니다. 영어와 수학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했던 탓에 3년간 내내 이 두 과목을 극복하고자 고군분투(孤軍奮鬪)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어렵게 출제되었던 대입 학력고사의 높고도 두터운 벽을 넘어서지 못함으로써, 결국 전기대 입시에서 실패의 쓰라림을 맛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비고사와 고사까지 치렀었던 나의 경험이, 예비고사와 유사한 학력고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영어와 수학이라는 비중 큰 도구과목을 준비할 때 요긴한 도움이 될지도 몰라, 학창 시절, 난공불락(難攻不落)이자 가히 공신(工神)이라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었던 몇몇 고등학교 동기들의 무식하기까지 했던 공부법을 두서도 없이 일러주었습니다. 이를테면, '성문종합영어''수학의 정석'을 통째로 외우라는 것인데, 이들에이처럼 말한 속내는 1년의 재수(再修) 기간을 오로지 영어와 수학 공부에만 몰입(沒入)해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무지막지해 보이긴 해도, 초지일관, 그런 막가파식으로 공부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한 학생이 주변에 적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다시 만난 것은, 해를 넘기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이듬해 6월 말 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결과를 중간 점검받으면서, 자신들의 당시 실력을 3학년 재학생 후배들 성적과 비교해서 고하(高下)를 가늠해 보고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포항을 떠나지 않고 지역의 단과(單科) 학원에서만 공부를 해서 제대로 된 모의고사를 치러본 적이 없었다기에, 나 역시 이들이 공들인 지난 6개월 간의 성취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시험을 치르게 하고, 채점 후 나타난 성취 결과를  보니 내 예상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습니다. 당장의 점수만으로도 SKY 대학의 무슨 학과를 지원하더라도 거의 승산이 있을 정도였는데, 이들이 보여준 진신실력(眞身實力)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도 마음속으로는 고개를 저을 만큼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이건 뭐, 당시 즐겨 읽던 무협지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불과 육 개월 사이에 실력이 극적으로 일취월장한 상황이었기에 눈앞의 결과를 두고 솔직이 고민이만저만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의고사를 치러본 적은 없다 하나, 모의고사 문제지에서 발췌(拔萃)한 난도(難度) 높은 문제를, 수강(受講) 중인 학원에서 기출문제로 이미 다뤄 보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0월이 되어 전기대학 원서를 쓰러 온 이 둘한바탕의 실랑이는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 작년 수준으로 원서를 쓰자는 나의 입장과, 지난 모의고사 결과를 바탕으로 수도권 최상위 대학의 경상계열 학과로 지원하려는 이들의 지나친 욕심이 서로 상충(相衝)된 것인데, 그간 이들의 피나는 노력을 지켜본 나로서는 결국 두 사람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수를 한 그 이듬해, 재학시절 지원했던 대학에 재차 도전해서 합격한 학생들이 더러 있긴 있었어도 두 단계 이상이나 상향 지원해서 자신이 원한 대학에 합격한 사례는, 진학지도 경험이 일천나에게 있어선 전례가 없는, 거의 기적과도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가정형편을 스스로 고려하여 대도시의 유명 재수학원에서 공부한 것이 아니라 거의 독학하다시피 포항의 단과 학원에서 월별로 적(籍)을 둔 채 학업에 매진해 던 터라, 이번 기회는 그들에게 있어 마지막 대학입시가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불 보듯 뻔한 실패를 감수하면서까지 무모한 도전에 나서는 것을 그대로 묵인하고 지켜보기에는 이들이 그동안 흘린 땀방울과 불철주야 기울인 노력이 담임의 입장으로 볼 때 어찌 깝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두 사람은 자신이 원했던 서울의 명문 대학교에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피땀 흘린 노력이 결코 이들을 배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수와는 그 이후로도 줄곧 연락이 닿아서, 지나 온 삶의 궤적(軌跡)을 굴곡이 있을 때마다 고스란히 전해 듣곤 했습니다. 하지만 영우는, 합격했다는 소식을 그로부터 직접 들어보지 못했기에, 시험을 치른 후의 점수를 포함해서 그 이후로의 행적이 묘연(杳然)했습니다. 가까이 사는 제자들과 함께 모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우를 포함해서 고등학교 졸업 이후 소식이 이어지지 않고 있는 몇몇 제자들의 근황을 추문(追問)해 보았지만, 끝내 영우의 소식만큼은 종무소식(終無消息)이었습니다. 그렇게 잊혔다간, 한 번씩 생각이 다시 날 때마다 지난 추억들과 함께 그를 기억 속으로 소환하는 일을 되풀이하곤 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말썽 한번 피운 적 없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성격도 아니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딱히 이렇다 할 만큼 영우를 추억할 만한 공통분모를 나눠 가진 것도 아닌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든 내 열 손가락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기에, 재수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함께 아프고 안타까워했던 당시의 심정이 손가락 끝여전한 여운으로 남아, 영우를 떠올릴 때마다 아련한 아픔으로 되살아나곤 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영우의 죽음은 순간적으로 나의 말문을 막히게 했습니다. 본인의 평소 성격처럼, 자신의 그릇만큼  역할과 소임을 다하면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정말 착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으리라 마음속으로 쟁여두었던 생각들이 참담(慘澹)하게 깨져버린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쉬 잠들지 못해 몸을 뒤척이고 있는데, 모로 누운 눈가를 타고 눈물이 방울져 흐르면서 찢어질 듯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적어도 순간만큼은 쉰 가까이 이르렀을 어림짐작 속의 영우가 아니라,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면 수줍은 표정먼저이 학창 시절의 앳된 모습과, 재수를 결심하고서 큰 용기를 내어 하숙집으로 찾아왔을 때의 조금은 겁먹은 듯 보였던 표정이 마지막 남은 영우의 잔상(殘像)으로 떠올라 가슴을 이토록 사무치게 만듭니다.


퇴직 이후에 제자들과만남이 잦아지면서, 함께 생각을 모을 일 가운데 하나가 유명(幽明)을 달리 한 제자들늦게나마 찾아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친구이고 나에겐 제자였던, 지금은 먼저 이 세상을 저버린 영우, 그리고 그 보다 앞서 요절(夭折)한 명원이가 영원한 안식(安息)에 들었을 그 어딘가를 찾아서 술이라도 한 잔 올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기억 속에서 여전히 풋풋한 얼굴로 남아있는 들을 영원히 가슴속에 묻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 억울하고 안타깝고 서글프지만, 그럴 수 있다면 그들 곁에 잠시라도 머물면서 무슨 말로라도 그들의 영면(永眠)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제와 오늘, 연이틀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졌습니다. 3학년 4반 모임방의 톡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안을 들여다보니 누군가가 이곳에다 올려놓은 사진들을 두고 서로서로 얼굴을 확인하며 옛 추억을 쫒느라 분주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진 속에는 뜻 모를 웃음을 짓고 있는 영우의 모습도 보이는데, 그 미소 띤 표정이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욱 가슴을 저미도록 만듭니다. 나도 모르게 울컥,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가누려고 나지막이 그 이름 불러 봅니다.


"영우야, 이놈 영우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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