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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Feb 23. 2023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다

어제는 옛날 직장 OB들의 모임이 있었다. 퇴직을 하고 난 후 맞이한 첫 해는 당시 극성을 부리고 있던 코로나 탓으로 모임을 가질 수 없어서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지만, 다행스럽게 지난해부터는 끊어졌던 모임이 다시 이어져서 송라 보경사나 청송 주왕산으로 바깥나들이도 할 수 있었다. 올해 들어선, 지난달 번개모임 이후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한 것인데 모인 사람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2월에 두 사람이 명예퇴직을 하게 되어 모임의 회원이 더욱 불어나게 되었는데 마침 어제가 두 분 선생님의 퇴임일이었다. 요즘은 정년보다도 명예퇴임을 하는 선생님들이 더 많아져서 2월은 학교마다 졸업식과 함께 퇴임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양이다. 아침에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있는데 휴대폰 상단에 알림 창이 떠서 확인해 보니, 지난해 오늘 내가 올린 글에 관한 내용이었다. 글 속에는, 동료 선생님들의 퇴임을 앞둔 소회(所懷)와 당시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던 대통령 선거의 관전평과 함께 코로나와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일상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지난해의 대선(大選) 이후에도 여야의 정쟁(政爭)은 끊이질 않아 온 나라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있다. 위민(爲民)의 치세(治世)는 물 건너간 지 오래이고 정치인들은 오로지 세력 다툼에만 몰두할 뿐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마치 시한(時限)을 두지 않고 세상 속을 마구 휘젓고 다니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몰염치하기까지 한 것이다. 이들이 세상 속에다 퍼질러 놓은 온갖 공약(公約)은 일치감치 공약(空約)이 되어버렸고, 승자의 관용(寬容)이나 패자의 승복과 같은 정치의 미덕 역시 이미 사라지고 없다. 다만, 여전히 코로나가 만연하고 있지만 그 기세가 누그러져 거의 막바지에 이른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다. 올초에도 새해를 맞아 썼다가 지운 글들이 여럿 있었다. 글을 다 써 놓고 보니, 이전에  글의 내용과 흐름이 같고 문장 하나하나의 표현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면서 진부했다. 흘러가는 세월이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써두었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뜻밖에도 마음속에 차오르는 감회가 새롭다. 결국, 흘러가는 세월은 누구든 거스를 수 없고, 세월이 지나 복기(復棋)해 보면 세상사 어느 것 하나라도 시간의 흐름 속에 편승(便乘)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이맘때 쓴 아래의 글은 지금 다시 읽어봐도 마음속 울림이 크다.

임인년(壬寅년) 새해를 맞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 막바지에 이르러 있다.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다지만, 교단을 떠난 지도 이미 한 해가 다 되어 간다. 찬 바람에 뒤섞인 음흉(陰凶)한 감염병(感染病)의 기세에 질겁을 하고 바깥나들이를 주저한 지가 한 달이 지났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던가, 봄은 가까이 있어도 도무지 주변 상황은 나아질 기미(幾微)가 없다. 그저 그렇게 세월만 흘러가는 것이다.

오랜 세월 몸 담았던 학교였으니, 예전 동료들이 퇴임한다는 소식에 무심할 수가 없다. 올해는 여섯 사람이나 정년, 혹은 명예퇴직으로 정들었던 교단을 떠난다 한다. 간간이 서로 안부를 묻곤 했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소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며칠 남지 않은 시간이라도 남아있어야 할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敦篤)히 하여 그 맺은 인연을 소홀히 말라 당부하고 싶다. 되돌아 봄은 후회와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돌아서 향할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 기억 속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공고(鞏固)해 질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단을 떠난 후 주위로부터 듣게 되는 가장 흔한 질문은,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내놓을 대답의 방향을 미리 예상하고 던지는 상투적인 물음이 있는가 하면, 진정으로 나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내 처지를 살펴 그에 동조해 주려는 배려의 질문이 그것이다. 어찌 되었든,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이런 물음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언제, 무엇을 하든 세월은 흐른다는 것이다.

지난 노고의 보상이랄까 살아가며 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마음으로 온갖 재미를 누리고 싶은 것이 모든 은퇴자의 로망이겠지만, 노동 없는 일상이 담보(擔保)되는 것 또한 퇴직 후 갖게 될 또 다른 삶의 전형(典型)이다. 내게 있어선 후자의 의미가 더 큰데, 지난 1년을 일상의 재미에만 몰두하지 않고 오로지 쉰다는 점에 더 큰 방점(傍點)을 찍고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얼핏, 반복되어 보이는 일상으로 인해 무슨 놀이를 하든 이내 무료하거나 권태로워지지는 않을까 하는 주변의 염려가 있었지만, 이미 번아웃 된 내게 있어선 퇴직 후, 하는 일없이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는 것만큼 치유(治癒)의 양약(良藥)은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 선거 유세가 중반에 접어들고 있지만 최선이 아닌 차악(次惡)을 뽑는 선거임을 후보자가 스스로 나서서 공인하고 있는 마당에 그 열기는 더 이상 끓어오르지 않을 듯이 보인다. 다급한 것이야 오로지 당사자들 심정일뿐이고, 그래서인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교통량 많은 대로의 사거리에 접한 대단위 아파트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유세 차량마저 오래 머물러 있은 적이 없다. 유력 대선 후보자들의 방송 토론조차 외면을 받고 있다 하니, 국가발전과 국민의 안위를 도외시한 채 상대방의 드러난 상처에 서로 소금만 거칠게 뿌려대는 꼴을 국민들은 더 이상 인내하며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岐路)에 서서, 이 황망(慌忙)하면서도 저급(低級)한 선택의 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지만, 이 또한 흐르는 세월에 의탁(依託)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이젠 확진자의 수가 수만 단위로 폭증(暴增)하는 현실 앞에서,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를 입 밖에 꺼내기조차 계면쩍다. 아니, 별 기대를 않고 있었으니 이 말에 함의(含意)되어 있는 미래의 장밋빛 현실은 실상 우리와 관련 없다 여겨 그간 이에 무관심했음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온갖 이해득실을 염두에 두고 이를 입에 발린 듯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어 온 세력들이 있다면 차제(此際)에 그 염치없음에 대해 두고두고 고개 숙일 일이다. 그동안 전체 의료계가 방역에 기울인 온갖 노고가 한순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하거나 폄하(貶下)됨이 없도록 경계하면서,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 그 이득을 편취(騙取)하거나 독식(獨食)하려는 세력들이 있었다면 이번 대선을 통해 준엄(峻嚴)하게 꾸짖고 그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만 한다.

마치 말뚝에 매인 듯이, 퇴직 이후의 활동이 불가피한 제한과 속박에 갇힌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지만, 좀 더 여유를 갖고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여행하지 못한 아쉬움은 못내 감출 수가 없다. 지난 1년의 휴식이 나에겐 엄청난 힐링의 순간이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누려보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오히려 더욱 깊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여행이 그러한데, 감염병의 굴레를 훌훌 벗어던지고 어디든 갈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 목마름이 해소될 것 같다. 아무튼, 이제 교단을 떠나게 될 동료들도 저마다 간직한 버킷 리스트 속 목록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그 지워진 부피만큼 아름다운 추억들을 그 빈자리에 차곡차곡 쌓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샤워를 하면서 정성스레 세면(洗面)한 얼굴에 마스크 팩을 했다. 근래 보이지 않던 점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얼굴 곳곳에 있던 기미마저 예전보다 짙어진 것이 영락없는 초로에 접어든 노인의 얼굴이다. 늙어가는 것이 두렵진 않지만, 수척해 보이거나 누추한 얼굴로 내 인생의 가장 젊은 '오늘 하루'를 맞고 싶지 않은 것이 요즘 내 솔직한 심정이다.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고 누구든 세월 앞엔 장사 없다지만, 가는 세월에 잘 편승해서 그 시절을 호기롭게 보낼 수 있다면 이 또한 의미 있는 일이지 않겠는가!

나의 세월, 나의 하루는 또 이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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