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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r 09. 2023

황리단길

지난 며칠간, 바닷가를 잠시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와선 컴퓨터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일을 되풀이하곤 했다. 칩거(蟄居)나 은둔생활, 두문불출이란 말이 지금의 내 처지에 썩 어울리는 말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입맛이 썼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은퇴를 하고 난 후 나처럼 온전히 백수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드문 것 또한 마음속 조급함을 부채질했다. 그까짓 일을 못해서 마음이 안달복달해진 것이 아니라, 의당 함께 놀아주어야 할 사람들이 하나 둘, 봄철 언 땅 꺼지듯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이전 직장 동료들만 해도, 두어 사람을 제외하면 한나절이든 반나절이든 자신의 사정에 맞는 일자리를 용케 찾아내어 일 삼아 매일 출근을 한다. 고등학교 동창생 녀석들도 몸이 부지런하기는 매한가지여서, 재취업을 한다던지 아니면 오는 봄과 함께 텃밭을 일구기 위해 농막(農幕)정비하거나 하다못해 취미로 색소폰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난? 종종 근황을 물어오는 질문에 한결같은 나의 답변은, '그래도 난 정말 놀고 싶어!'였다.


사실, 난 아직도 학교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질 못했다. 교직의 마지막 몇 해는, 세파(世波)나름 질겨진 마음으로도 버티기 힘들 만큼 가르쳐야 할 학생과 교육환경이 불과 몇 해 전 세상과도 확연히 비교될 만큼 달라져 다. 큰 변화의 물결이 도도하게 밀려와 마치 장강(長江)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구태(舊態) 절어있던 나를 격랑(激浪) 속으로 휩쓸고 들어갔던 것이. 결국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인 것, 도망치는 심정으로 나는 교단을 떠났다. 한편으론, 좋은 선생님, 훌륭한 선생님이란 겉만 번지르르한 사회적 수사(修辭) 역시, 이미 한번 마음이 어정쩡해져 버리고 난 후로는, 그저 영혼 없이 떠들어대는 입에 발린 소리로만 여겨졌다.


그런데도, 무너지는 교권을 다룬 심층 취재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나면 정말 부아가 난다. 3월 7일 방송된, PD 수첩의 '저는 아동 학대를 한 교사입니다'를 보고나선, 정말 남 일 같지 않은 마음에서 밤늦도록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남모를 속사정을 두고 왈가왈부하고자 함이 아니다. 교육의  구성원인 교사와 학생, 학부모를 제대로 수용하고,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昨今)교육환경이 안타까운 것이다. 결국 세상의 급속한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결과로, 교육을 뒷받침해야 할 사회적 시스템과 제도적인 기반(基盤)이 취약한 교육현장이 온갖 교육활동부작용과 부조화의 악순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제는 하루종일 머리가 무거웠다. 그래서 날이 새기 무섭게 집을 나섰다. 송라 보경사와 구룡포, 경주로 생각이 갈렸으나 막내의 뜻을 따라 경주 황리단길을 목적지로 택했다.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나선 길이라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신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지난해 10월, 폐렴으로 죽도록 고생하기 바로 전에 함께 한 여행이 서울 투어였으니, 그야말로 사지(死地)를 건너고 나서 처음으로 동행하는 나들이였다. 이른 점심으로, 경주에 가면 종종 들리곤 하던 경주지청 뒤 삼영 복식당에서 복지리를 먹었다. 밀복을 넣은 말간 국물이 팔팔 끓을 때까지 데쳤다가 꺼내서 참기름과 함께 연한 초고추장에 비빈 콩나물 무침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식초를 살짝 뿌려 맛을 낸 담백한 국물과 함께 식감(食感)이 쫄깃한 밀복은 맛이 비리거나 물리지 않아 나와 막내가 최애(最愛) 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에는, 황리단길을 돌아보다가 평소 먹기 힘들거나 사람들이 줄 지어선 핫한 곳의 퓨전 음식을 먹어보려고 했으나, 경주로 가는 도중에 그만 마음이 바뀌었고, 결국 후회가 남지 않는 선택이 되었다.


개학이 되어서인지 황리단길을 찾은 사람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았다. 무리를 지어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목에 패찰(牌札)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는데, 명찰에 직함과 함께 이름까지 인쇄되어 있는 것을 보니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것이 분명했다. 거침없는 발걸음과 함께 저마다 밝게 웃음 띤 얼굴이 지켜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화사한 봄날, 힘든 경쟁을 뚫고 사회인으로 새 출발하고 있는 젊은이들! 풋풋한 얼굴엔 자신감이 넘쳤고 걸음걸이는 하나같이 당당했다. 공기업 취준생인 막내가 혹시라도 주눅 들까 슬쩍 돌아보다 서로 얼굴이 마주쳤는데, 빙긋 되돌아 웃어주는 바람에 아비의 눈치 없음이 들킨 듯해서 그만 양볼이 붉어지고 말았다.


황리단길의 주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 길가의 샛길을 따라 많은 상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옛날 가옥의 원형을 살려 인테리어와 함께 재건축을 한 곳과, 옛 집터에다 전통 기와집을 여러 층으로 올린 새 건물 여러 곳이 눈에 띄었는데,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골목길을 살리려다 보니 억지스러운 건물 배치와 그에 따른 부조화가 다소 눈에 거슬렸다. 실제, 사람들로 붐비는 상점은 레트로풍이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가 다소 거칠면서도 옛 모습이 어느 정도 그대로 보존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젊은이들은 감성(感性)을 좇고, 나이 든 사람들은 추억을 쫓아서 이곳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속한 트래킹 모임 친구가 황리단 길 사진을 카톡에 올린 것을 보더니 금세 ‘○리단길 열풍이란 글을 올렸다.

서울 경리단길이 이른바 핫 플레이스로 뜨면서 시작된 현상이 망리단길, 송리단길 등 서울에 몇 개의 유사품을 만들어 내더니, 이제는 지방 곳곳까지 확산되고 있다. 웬만한 도시라면 하나쯤 있는 지경이다 보니 전국적으로는 30개가 넘는 ○리단길이 생겨났다고 한다. 대구와 경북만 하더라도 대구 봉리단길, 문경 문리단길, 경주 황리단길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포항에도 효자시장 인근에 ‘효리단길’을 유행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가히 열풍이라 부를 만하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진작부터 전국 어디든, 그 지역을 대표하는 골목길 하나쯤은 자랑삼아 내세웠을 것이다. 특히 황리단길 주변에는 고분군(古墳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고, 길 건너편으로는 경주 중심가가 이어지고 있으니 천혜(天惠)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할만하다. 다른 곳에 비할 바 없는 하드웨어를 갖춘 곳이니, 이제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을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갖추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를 다루는 인적자원의 자질 역시 중요할 것이다. 장사는 주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점원이 하는 것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길거리 탐방의 백미(白眉)는 길거리 음식이다. 흔히 먹킷리스트라 불리는 황리단길 먹거리 가운데서 MZ 세대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것이 바로 경주 십원빵이다.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가 있어 젊은이들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데, 모양이 우선 특별나고 관광지에서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거리를 쏘다니며 먹을 수 있기에 무척 인기가 많다. 과연 골목길 곳곳에는 십원빵을 구워파는 상점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는데, 마치 도시의 웬만한 골목길마다 자리 잡고 있는 잉어빵 포장마차를 보는 듯했다. 막내와 난 십원빵 대신 오징어에다 시즈닝 한 치즈가루를 입혀 튀김 한 진미채를 컵에 포장해서 거리를 오가며 나눠먹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슬러시를 번갈아가며 빨대로 빨아 마시는데, 서로 눈치 보며 먹는 맛이 쏠쏠했다. 원래 길거리 음식이란 각자 자기 몫을 혼자 주문해 먹기보다는 하나만 사서 서로 번갈아가며 나눠먹을 때 그 맛이 더해지지 않은가.


집에 돌아오니 이미 저녁을 먹을 때가 지나있었다. 중간중간 군 주전 버리를 했기 때문에 시장기는 느끼질 못했다. 오랜만에 실컷 사람 구경을 해서인지 그간의 두문불출로 인한 입안의 쓴 맛도 이미 말끔해진 듯했다. 비로소 백수의 길이 보였다. 조급해져 있었던 것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마음껏 쓸 수 있는 시간을 너무 급하게, 조금씩 쓰려고 서두르며 욕심에 사로잡혔던 탓이었다. 글을 쓸 때도 그랬고, 몸이 아팠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내겐 나 자신의 삶이 있고, 동료나 친구들에겐 또 그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다. 그걸, 백수가 되면 한결같이 동일한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잘못 받아들였던 것이다.


오늘 낮에 들렀던 황리단길도 그러하다. ○리단길로 불리는 수많은 길이 있지만, 황리단길은 그저 황리단길일 뿐이다. 경리단길이 아무리 핫하다 해서 그 길을 그대로 베껴와서는 길이 가진 생명력이 이내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길도 황리단길이다. 내 인생길은 황리단길처럼 더도 덜도 아닌 그저 내 인생길일 뿐인 것이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이제 내가 가야 할 길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아직은 멀리까지 남아 있을 내 인생길, 쉼 없이 가야 할 길이지만 결코 조급하거나 서두르지 말아야 할 바로 그 길 말이다.


경주 곳곳에 산재(散在)해 있는 고분군
황리단길 뒷편의 고릉(古陵)
황리단 골목길 담 위의 피규어
홍매화 뒷편으로 새로 들어선 기와집이 보인다.
아직은 멀리까지 남아 있을 내 인생길, 쉼없이 가야할 길
경주를 대표하는 소설가 김동리의 시비(詩碑)
경주를 대표하는 시인 박목월의 시비(詩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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