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의 항공이야기
아주 또렷하다. 그리고 아주 명백하다.
손님에게 들었던 말 중에.. 안 좋은 말 중에 가장 내 기억에 남는 말.
손님에게 안좋은 말, 욕을 듣는 경우는 언제일까?
보통 항공기 운항 지연이나 결항이 있을 때 발생한다. 두번째는 어떤 사유로 손님이 항공기를 탑승하지 못하게 될 때이다. 이 경우는 대체로 손님이 마감시간 보다 늦게 오신 경우가 많고 나머지는 항공사의 과실일 수도 있고 손님의 특별한 상황일 때도 있다.
그리고 정말 이유가 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다. 물론 앞선 경우도 많이 지친다. 초반엔 일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지만 지금은 멘탈이 강해져서 훌훌 털어낸다.
육두문자, 쌍욕이라고 하는 범주의 말들은 거의 다 들어본 것 같다. 비웃음과 조롱섞인 말들도 들어봤다.
역시 처음엔 화도 나고 힘들었지만, 대체로 항공기 지연이나 결항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이라 직업적 사명감을 가지고 대하기 때문에 화가 나진 않고 다만 정말 눈 앞에서 그런 말들을 들으면 조금 지치고, 꽤 오랜시간(보통 20~30분?) 혹은 다수에 둘러싸여 욕을 들으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식은 땀이 흐르긴 한다.
내 뇌리에 강렬하게 꽂힌 그말. 나도 순간 당황했고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 했었다.
자세한 정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항공기가 장시간 지연되었을 때로 기억한다.
역시 '안전운항을 위한 예기치 못한 점검'이 발생했던 것이다. 거의 10년 전이라 이 당시만 해도 '항공기 안전 점검'에 대해서는 보상 규정이 매우 보수적이고 까다로웠다. 즉, 보상이 불가했던 상황이다.
아주머니 손님이셨다. 장시간의 지연으로 제주도에서의 일정이 모두 일그러져서 피해가 크셨다. 하지만 당시 정황과 규정에 의거 현금(비용) 보상은 불가했고, 지연에 대한 증명서 발급과 수수료 없이 여정변경/환불을 제공해 드리는게 다였다. 여기서 손님에게 '수수료 없이' 라는 말을 드리면 또 한 번 욕을 먹는다.
이렇게 지연이 되었는데 '수수료 면제'로 생색을 내는 것처럼 들리시기 때문이다. 맞다. 나도 백번이해한다.
그러나 '수수료 면제'에 대한 안내는 의무적으로 드려야 한다. 반대로 여정변경/환불 시 수수료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알고 있지만 늘 말씀드리고 어김없이 한 번 더 욕을 먹고 있다.
이런 상황에 아주머니는 정말 화가 나셨다. 하지만 착하신 분이셨던 것 같다. 보상에 대한 요구를 여러 차례 하셨고 나는 정말 죄송한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설명드렸지만, 손님은 아마 앵무새처럼 보이셨을 것이다.
아주머니의 표정이 크게 상기 되셨고 내 기억이 맞다면 조금은 화로 인해 떨고 계셨던 것 같다. 그리고 무언가를 말씀하실 것 같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굉장히 선명했던 그 한마디.
"야이 뚱땡아!"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라 순간 당황했고 인식이 되려는 찰나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사즉생의 심정으로 나는 온몸의 긴장감을 얼굴로 끌어 모아 볼과 입주위 근육을 단단히 굳혔다.
"손님, 거듭 죄송합니다."
아주머니는 그것이 마지막 분출이셨던 것 같다. 혹은 아주머니도 당황하셨을까?
그 뒤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윽고 자리를 뜨셨던 것 같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100kg다.
개인적으로 재미난 에피소드로 생각하고 있다가 글로 적어 보았는데, 적다보니 그때의 상황과 아주머니의 심정은 어떠셨을까 생각해보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다시금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