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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항중인 김씨 Aug 04. 2023

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건강하셔야 해요!

김씨의 일상이야기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찾았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셔서 약6년 전부터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1년에 두번 정도는 찾아 뵙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가실 때 시간이 맞으면 가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는 면회가 아예 불가했고,


조금 완화되었을 시기에는 요양원 건물 입구 문 앞에서 투명한 유리 문을 사이에 두고 잠시 뵙고 간적도 있었다.


작은 틈으로 목소리는 전할 수 있었다.


이제는 정상적인 면회가 가능해졌다. 


할머니는 알츠하이머 질환도 있으셔서 기억력이 많이 쇠퇴하셨다.


아버지는 a4 종이에 '아들', '며느리', '손자' 를 써 놓고 할머니에게 보여주신다.


다행인건 할머니께서 글을 정확히 읽으실 수 있고 인지하실 수 있는 것 같다.


신기하고 다행이다.


하지만 이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고모들에게만 해당한다.


손자인 나는 알아보시지 못하신다.


손을 잡아드리려 해도 손을 뒤로 빼시면서 경계하신다. 


할머니 눈을 한참을 웃으며 바라봐도 할머니는 내게 어떤 것도 표현해 주시지 않는다.


나는 실망했을까?


아니.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할머니가 내게 단단히 삐지셨구나.'


'할머니 죄송해요~~! 그리고 지금처럼 건강히 더 저희들 곁에 계셔주세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사랑하셨다.


어렸을 때는 몰랐고 아니 몰랐다기보다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두분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서울로 올라오셨다.


친가,외가 모두 서울에 있다 보니 나는 친구들에 비해 조부모님댁에 방문하는 일이 많았고, 어렸을 때는


매일 혹은 2,3일에 한번씩 안부 전화를 드리는 나름 착한 아이였다. 


내가 착한 것은 아니었고 부모님의 가르침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느껴진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하지만 나는 조부님댁에 가면 밥을 잘 먹지를 않았고, 살갑게 굴지도 못했다. 


반대로 외가에 가면 밥을 두공기나 먹었다. 


조부모님은 시골 중에 시골에서 오셔서 할머니께서는 매우 소박한 음식을 만드셨고, 


외가에선 비싸고 맛있는 것들이 잔뜩 있었다.


생전에 할아버지께서는 서울에 오셔서 막노동을 하시기도 하셨고, 이후에는 폐지도 주우셨다.


자식들이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버신 것을 손자들에게 용돈을 주시기도 했다. 


천원짜리 열장을 접어 만든 만원짜리 묶음을 두세개 정도 받아 본 기억이 있다.


외가에서는 보통 친구들이 받는 것의 수배에 달하는 용돈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 나는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조부모님, 외조부모님의 사랑의 크기는 다르지 않다는 걸.




이 생각이 할머니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순간 찰나에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몰라보는 할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라,


가장 먼저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그리고 그렇게 사랑해주셨던 손자가 서운하게 해드린 것에  


삐지셔서 몰라봐 주시나하고 할머니가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할머니, 죄송해요~~지금처럼 건강히만 계셔주세요!'



할머니는 치매, 알츠하이머를 겪고 계시지만 하루 몇시간 씩 성경책을 보신다.


존재해 주심만으로도 큰 힘이 되요 할머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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