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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Apr 10. 2024

도망자의 삶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곳으로부터

일반 열차는 뭐고, 급행 열차는 또 뭔데?


지하철 호선이 겨우 두 개밖에 없던 고향을 떠나 마주한 서울은 퍽 어지러웠다. 지독하게 추위를 많이 타던 내가 한 겨울에도 얇은 코트 한 장을 걸치고 다닐 정도로 이곳의 대중교통은 사람이 가득했다. 아침, 저녁으로 바구니 속 콩나물이 되었다.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쉴 새 없이 휘청거리면서도 꼬꾸라질 빈틈 하나 없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 휩쓸리지 않으려 차디찬 쇠기둥을 꼭 잡은 내 모습이 창가에 비칠 때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의미를 잃어가곤 했다. 호기롭게 방문했던 부동산에서 보여준 첫 집을 아직 잊지 못한다. 가로등 하나 없는 좁은 골목길, 누구나 드나들 수 있을 법한 초록색 유리문, 너무 낡아 끽끽거리는 현관을 열자 침대 하나도 둘 수 없을 만큼의 좁디좁은 공간과 마주했다. 여기서 혼자 살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할 순 없지. 울며 겨자 먹기로 역에서 멀지 않은 곳의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월급 3분의 1을 월세라는 목숨 값으로 탕진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애초부터 서울 살이는 내게 관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을 선택했던 건 한평생 가족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내 바람 탓이었다.


’다른 것에 마음을 기대어 도움을 받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오는 ‘의지하다’의 사전적 정의다. 이 자료에 의하면 내게는 의지할 가족이 없었다. 이혼 후 일찍이 집을 나가버린 아빠, 술 독에 빠져 사는 엄마, 엇나간 지 오래인 형제까지. 마음을 기대기에는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사람들뿐이었다. 배배 꼬인 혀로 쏟아내는 폭언들, 그것을 참지 못해 손을 휘두르는 이와 뜯어말리는 누군가. 어김없이 찾아와 반복되는 매일의 밤은 너무 길고 외로웠다. 이런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서울의 치열함을 견디지 못한 누군가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도 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험난한 객지 생활을 하냐며 포근한 제 부모의 품에 다시 안긴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달아날 곳이 없었다. 각박한 일상에 지쳐 고개를 돌릴 때면 술에 취한 채 나를 기다리는 엄마가 서있었다. 뜨거운 눈물로 말랑해졌던 심장이 차게 식는다. 그래, 지옥 같은 마음으로 살바에야 텅 빈 잔고가 낫지. 고향에 내려가고 싶어질 때마다 지난밤들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지금을 살아낸다. 난 가족은 있어도 기대고 싶은 가족의 품은 없는 사람이니까.


오늘도 꽉 찬 지하철 속으로 내 몸을 욱여넣는다. 무슨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지조차 망각한 채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허리가 뻐근하고 다리가 부어온다.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는 나에게 이 시간은 유난히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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