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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북 키보드 연습

by Sia

매주 목요일 오후 수업 일과가 다 끝나고 난 후 한 시간 댄슨과 같이 공부하기로 했다.


타라의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댄슨 얼굴을 봤다. 여전히 싱글벙글 미소였지만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 느낌이 확 들었다. 타라는 댄슨에게 이제부터 목요일 방과 후에는 나와 함께 공부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댄슨의 마음을 사기 위해 공부 시작 전 한국 마트에서 산 한국 과자를 깔았다. 입맛에 맞았는지 댄슨은 과자를 몇 번이나 먹고 또 먹는다. 과자를 다 먹고 본격적으로 키보드 연습을 같이 시작했다. 하지만 댄슨은 별로 키보드 연습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열 손가락을 계속 키보드에 놓고 키보드를 치는 것이 영 어색한 듯하다. 자꾸 장난식으로 양손 인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다가 나의 날쌘 눈총을 받는다. 나의 찡그린 인상이 재미있는지 댄슨은 그런 장난을 계속한다. 댄슨의 두 손가락을 획 치고 큰 소리로 '집중해'라고 야단을 이미 쳤어야 하는데 싱글벙글 댄슨에게 도저히 그렇게 하질 못했다. 내 속에 있는 한국 선생님 기질을 죽이느라 정말 힘들었다.


"내 키보드는 이상해요. 한번 치면 세네 번 나와요."

자꾸 잘못된 키보드를 눌러 댄슨에게 짜증이 나려는데 댄슨이 말한다. 내가 직접 한번 쳐봤다. 정말이다. 키보드가 고장 났는지 한 자판을 한번 눌렀는데 노트북 화면에 세네 번 나타난다. 정말 짜증 나는 키보드다. 이런 키보드로 어떻게 수업에 임했는지 정말 댄슨은 부처님 감이 될만하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이지 연습을 계속하면서 이런 문제가 조금씩 사라지게 되었다. 댄슨의 키보드 속도도 조금씩 올라간다. 처음에는 별 세 개 중 하나도 받지 못했는데 나중에는 평균적으로 별 두 개를 받았다. 내 인생에서 받은 그 어떤 별보다 더 값진 별이었다. 물론 내가 얻은 별은 아니였지만 말이다.


G, H, F, R 그리고 스페이스바 연습까지 하다가 한 시간 45분이 지났다.


댄슨은 기쁘게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과연 내가 댄슨에게 키보드 연습을 시키려는 의도가 잘 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면 더 빠르고 능률이 올라가긴 하지만 댄슨은 이미 두 손가락 독수리 타자법이 너무 익숙하다. 댄슨 말고도 다른 영어학습자 학생들 중에도 댄슨처럼 독수리 타자법으로 키보드를 치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그들은 댄슨보다 타자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 (두 손가락으로도 그렇게 빨리 타자를 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댄슨에게 지금은 영어 문법공부나 영어 읽기보다 키보드를 제대로 칠 수 있는 연습이 더 절실히 보였다. 대부분의 수업이 크롬북으로 이루어지고 크롬북 키보드를 사용하는 일이 많은데 댄슨은 두 손가락으로 2-3초에 스펠링 하나를 친다.


댄슨이 어떻게 하면 키보드 연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키보드를 제대로 치면 학교 수업이 훨씬 더 편해지고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냥 무작정 '이거 중요하니까 반드시 해야 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댄슨의 자발적 능력을 무시하는 행동이기에 하고 싶지 않다. 댄슨이 키보드 연습의 중요성을 깨달으면 그것 자체가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계 많은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학생들을 '결핍 시각'으로 보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학업 성취가 떨어지는 아이들은 학업 성취가 월등한 아이들보다 뭔가가 부족하고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명방식이 전형적인 결핍 시각이다. 난 댄슨을 결핍 시각으로 보고 싶지 않다. 댄슨의 현재 모습은 자신이 처한 가정, 경제, 사회 환경에서 댄슨이 가장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댄슨이 타자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자 연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없었기 때문에 독수리 타자 법이 이 아이가 발전시킬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젠 댄슨에게는 타자 연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다. 하지만, 너무나 익숙하고 편한 독수리 타자법이 댄슨을 강하게 유혹한다. 이 유혹에 쉽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댄슨이 타자 연습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진정한 마음은 항상 통한다는 진리를 믿어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댄슨을 향한 나의 진정한 마음이 '결핍시각'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아이에게 부족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가진 재능과 힘을 보고 그것을 발판 삼아서 그의 성장을 도와주는 일. 말 만큼 쉬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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