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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로운 Jun 09. 2022

불나방의 회귀본능

새삼 벌써 일 년. 그동안 절반가량은 외로웠고 이후 6개월도 울음의 시간이었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떠나버린 놈 뭐가 그리 아깝냐는 반응뿐이었다.


나보다 항상 먼저인 게 많은 사람, 이윽고는 더 나은 사람과 삶을 찾아 떠난 사람에게 매달리지 말라며.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고, 더 이상 여유가 없는 사람보다 좋은 사람은 많다며. 그저 지금 그냥 휑한 마음에 힘들 뿐이라고.


매일매일 죽을 것 같던 하루하루를 지나 그렇게 일주일, 그리고 또 한 달이 되었다. 그렇게 벌써 일 년.


그러나 나는 그저 불을 찾아 돌진하는 불나방 같은 삶. 어쩌면 회기 본능이라고 하겠다. 그냥 불을 보면 돌진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있어서 나를 아끼는 누구든 불을 조심하라고 말 한들 이루어 낼 수가 없다. 나도 내가 걱정되는데, 머리론 알겠는데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고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친구들의 조언으로, 잊고자 급하게 만났던 사람들은 어찌 된 일인지 다 똑같았다. 이쯤 되면 똑같은 사람만 골라다 만나는 듯한 콜렉터 급이나 된 듯했다. 그들을 미워할수록 나의 자존감도 하락했다. 내가 가치가 없어서 이런 사람들만 만나는 거야, 같은 자기 비하만 늘어났다. 그렇게 벌써 일 년.


훌쩍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나날이었으나 훌쩍 떠날 수 없는 현생의 나날이 내 발목을 잡았다. 아니 발목을 잡게 두었다. 문득 외로움에 잠식당해버릴 때면 하나씩 일을 늘렸다. 아무런 생각도 안 나도록 나를 채찍질했다. 할 수 있는 부업은 다 하고 손에 닿는 곳에 있는 모임은 다 나갔다. 자는 시간도 줄이고 체력이 떨어지는 걸 알면서도 나의 성장을 도모한 그에게 감사하다며 되지도 않는 위안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 한 가지 같은 일상 속에 늪에 가라앉는 사람 같던 나를 건져낸 건 미처 생각지도 못해 취소할 기한도 놓쳐버린 비행기표였다. 내년엔 꼭 함께 가자며 예약해 둔 두 자리짜리 비행기표. 이미 취소 기한이 훌쩍 넘어 "출발일이 벌써 다음 주!"라며 해맑게 웃고 있는 알림톡이 야속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위약금도 아까운데 그냥 떠나버리자는 생각에 도달하자마자 남은 연차를 탈탈 털어 바로 그다음 주 그 하늘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이렇게 바다에 앉아서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듣고 있게 된 것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무도 모르는 이 바다에서 앉아있자니 문득 평화로움에 어이가 없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나를 혹사시켰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언어로 가득한 낯선 바다에서, 나를 미워하는 이들도 내가 미워하는 이들도 없는 공간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갈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미움이 없어지니 나의 방향이 사라졌다.


사람에게 용서란 어떤 걸까? 그동안의 나는 전투력이 가득하여 항상 경계태세였다. 나의 미움은 정당해, 그들의 추악한 행태를 낱낱이 밝히며 나의 결백한 존재를 증명하려 애를 썼더랬다. 질투는 나의 힘이었고 분노는 나의 추진력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건 의미가 없다. 사실 인간에겐 영원한 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또 사람은 언제든 변한다. 차라리 다 변한다고 보는 것이 맘 편할 것이다.


눈앞에 있는 바다의 끝은 어딘지 끝의 끝을 쫒고 있던 침묵을 깬 건 바다 뒤 카페 사장님이었다. 갑자기 불쑥, 내 뒤에서 말린 코코넛들 같은 간식류를 내미시는 거였다. 가끔 이런 표정의 사람을 본다며, 사실 이런 작은 거 하나에 살아갈 힘이 생기지 않냐며.


왜 그렇게 내 맘을 잘 아는지, 말도 안 했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한 낯선 이의 호의에 눈물이 찔끔 났다.


용서와 이해가 아주 먼 얘기라고 생각하던 나날들이 있었다. 나에게 모진 말을 하고 때론 나를 나락으로 보내려고 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 생각한 나날들. 미움이 가득하여 내가 나를 좀먹던 나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를 베풀고 이해와 용서를 하는 자들이 호구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누가 맞고 누군 틀렸고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나누던 시절들을 지나 길게 보면, 한 호흡 안에 인간으로서의 이해라던가 인정이라던가 실수를 안아주는 마음이 생겼다. 사람이 완벽하지 않아서 사람이지. 기계도 가끔 뻑나고 그게 또 당연해지는데. 누구를 추앙할 수록 채워진다는, 환대 할 수록 호구가 되는게 아니라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는 말을 알 것도 같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작년보다 안정해진 내 파도를 느낀다.

새삼 시간이 빠름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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