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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로운 Jan 07. 2024

1.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뭐든 시작은 나를 잘 알아야 한다.

글이든 노래든 사진이든 좋아하는 건 많았지만 재능의 관점에서 내세우기엔 부족하여 좋아하는 것 중 그나마 가장 현실성 있는 분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럼 나는 뭘 좋아하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지?


주변의 화학과 친구들에게서 언젠가 본인들의 동문 중 몇몇은 조향사 자격증을 딴 후 L생활건강 등의 진로로 진출한다는 말을 들은 게 번뜩 생각이 났다. 그 정도면 현실적으로 차후 진로의 하나로 고민해도 좋을 법했고, 충분히 흥미로웠다. L건강이면 대기업이니 그래도 육아휴직같은 것도 보장 될 거고 자격증을 따면 차후 공방이라도 차려서 은퇴하고 할 일도 생기지 않을까.


지금 있는 회사는 업무적 특징으로나 사내 분위기등 여러 조건등으로 결혼 이후의 삶이 병행이 쉽지 않은 편이었다. 30대 기혼자인 여자 선배가 없는 것은 곧 나의 미래같기도 했다. 아이가 있는 선배들은 초등학교를 보내기까지 약 10년정도는 꾸준히 옆에서 봐줄 어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게 가족이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가족의 역할을 해줄 사람을 자본을 들여 고용해야하는 게 당연했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선배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며 벌어온 수입과 아이의 성장시기를 맞바꾸는 것에 현타를 맞는 듯 했고, 그래서인지 현재 cc이신 팀장급을 제외하곤 기혼자인 여 선배들은 없다.


아, 나는 일을 하지 않고는 안되는 사람인데. 갑자기 인스타에 널려있던 주부 부업 광고글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저런거에 속는 사람이 있나?' 싶었는데 그게 바로 내가 될 수도 있겠네..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에 그 길로 바로 학원에 등록했고 매주 주말마다 4시간씩을 들여, 그렇게 종이 한장이지만 나를 인정해 줄 자격증이 생겼다. 


사실 자격증을 딴 직후엔 본업에 대한 현타가 심해서, 또 사실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 뭐 하나 직업이 생겼다는 안정감에, 그냥 남들의 유행처럼 퇴사하고 자격증 취득 후의 전형적인 길대로 공방을 차리고 퇴사 브이로그나 찍을까 했다.  


그러나 단번에 생긴 자격증만 믿고 덜컥 퇴사하기엔 너무 무모했고 무서웠다. 공방을 차리자니 초기 자본으로 들어갈 투자금이 상당했고 현재엔 시간 또한 자투리로 내기엔 힘들었다. 병행하는 것이 부업의 시작인데 주객전도가 되면 안되지! 정신을 바짝 차리자. 결국 공방은 퇴직 후 많은 사람의 꿈이라는 카페 대신 차리기로 하고, 당장 이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어떤 분이 퍼플리에 사이드 프로젝트의 여러 방안에 대해 써 놓은 글을 읽다가 클래스라는 루트를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볼수록 강의와 강연, 수다를 좋아하는 내게, 클래스는 딱 적합한 방법이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적은 자본으로 성공할지 아닐지 미리 알아볼수도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실 클래스란 듣기만 했었지 내가 해볼 생각은 못했는데. 먼저 시작해본 선배(?)의 자세한 후기와 경험에 힘입어 그대로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날로 바로 예약사이트를 켜서 내가 제일 많이 놀러가는 동네의 원데이클래스를 예약했다. 이후로도 친구를 만나거나 데이트를 할때 공방 일정을 하나씩 끼워넣었다. 시장조사를 핑계로 재밌게 놀긴 했으나 집에 돌아가면 나름의 분석을 작성했다. 


나는 너무 매의 눈을 키고 가서인지 다닐수록 소비자로서의 아쉬운 부분이 하나 둘 생겼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바라는 기대치의 허들이 낮았던 게 신기했다. 물론 거슬릴 만큼은 아니였기에 다들 넘어간 부분이었겠지만 내가 직접 이정도까지 보완한다면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수 있겠다는 무모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격증을 딴지 한달, 조언들을 참고하여 떨리는 맘으로 재능 공유 플랫폼에 수업을 등록했다. 자소서를 쓰는 마음으로 수업계획서를 쓰고 왕년의 논술실력을 쏟아 부어 신청한지 이틀, 너무나 감사하게도 단번에 승인이 났다.


엄마, 나 재능있나봐!

못먹어도 고, 일단 첫걸음은 순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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