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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로운 Apr 23. 2021

팽이(?)치는 인생 (feat.팽이의 인문학)

평범한 요요러는 쳇바퀴를 굴려야한다

오랜만에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 새 봄의 시작이라는 3월에 걸맞게 1분기 마감에 앞서 새롭게 벌려놓은 새해 다짐들을 한 숨 마무리하고 왔다.


새로 신입사원이 입사해 일부 인수인계를 들어갔고 제2의 직업을 대비하여 시작한 조향 수업이 끝이 나서 주니어 조향사 자격증을 땄다. 매년 다짐하는 다이어트를 독려코자 예약해놨던 프로필 촬영도 드디어 끝내서 인화에 들어갔다.

돌아보면 살면서 난 내가 어떤 능력이 딱히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적당히 두루두루 얕고 넓을 뿐이나 이걸로 뭔가 밥벌이를 해낼 능력이 되진 않는 듯했다. 그 때문인지 어디에 내놔도 어중간한 나는, 매번 이것저것 도전하고 벌려놓길 좋아하여 항상 끝에 가서 마무리를 하느라 겨우겨우 애를 쓰곤 한다.

요즘 다들 N잡러가 대세라고 하여 혹시 이게 제2의, 제3의 직업이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N 잡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것도 기억력이 좋고 꼼꼼해야 할 수 있는 거였다.


나의 경우, 잘 까먹는 금붕어라 삼성의 리마인딩 기능을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네이버의 캘린더도 필수 앱이다. 이게 없으면 업무의 절반 이상은 불가능하여 어쩌면 진즉 짤렸을 지도 모른다. 기계치이기도 한 터라 IOS 기반의 사과폰은 내게 따라갈 수 없는 “인싸 갬성, 그 어딘가” 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으나 능력이 안 따라 주는 것은 퍽 속상한 일이다.

사실 새해에 올해 버킷리스트로 이것들을 하겠다고 다짐할 때쯤엔 모든 것을 이루면 뭔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대로의 일상이긴 하다. 촬영 때문에 한동안 식단과 운동을 힘들게 유지하곤 했는데 촬영이 끝난 지금, 관리하지 않았더니 2주 만에 다시 다이어트 전으로 몸무게가 복구되었다. 당장 공방을 차릴 것도 아니라 마스터 조향사 수업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여 여전히 전업 회사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주니어 조향사라고 하여 일반인보다 대단히 후각이 뛰어나진 것도 아니다. 참 대단한 관성이다.

의지를 가지고 뭔가를 도전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습관화하여 유지하는 데엔 더 큰 노력이 든다는 걸 몸소 깨닫고 있는 요즈음이다. 재테크를 하겠다며 사놓은 책들이 책장 한 켠에 먼지만 뽀얗게 쌓여가는 듯하여 매주 꾸준히 목표치만큼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지속하여 읽는 것이 여간 쉽지 않다. 자타공인 욜로인 내가 재테크를 해보겠다며 쇼핑도 줄이며 잔고를 쌓아가려고 하는데, 인스타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그렇게 자꾸 봄옷을 추천해준다. 졸업하면 시험은 끝이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계속 세상에게 시험당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초등학생 때를 돌아보면 우리 반 애들은 팽이를 좋아하여 쉬는 시간마다 팽이를 치곤 했다. 돌아가는 팽이를 쓰러지게 하지 않기 위해선 계속 팽이를 쳐줘야 한다. 너무나 간단한 물리학 법칙이지만 인문학적으로 현대인의 다른 말은 어쩌면 팽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거 뻔하게 이해되고 필요한 것 알지만, 가끔은 우리네 삶이 놀아도 돌아가는 전자 팽이였음 좋겠다. 돈 많은 백수라던지. 사실 내 성격에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진 않겠지만, 로또에 당첨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않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쨌든 다다익선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자, 헛된 꿈은 이쯤 하고, 슬픈 운명이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에 있어 게임마냥 공략집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렇지 못하니 퀘스트를 깼을 때 보상이 돌아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은 어떤가.

사실 모든 과정에서 아주 얻은 게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꾸준한 급여가 들어오는 직장의 중요성, 하고자 하는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 욕심을 뒷받침해주는 시간관리의 요령,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나와 같은 모든 이들을 향한 동질감과 응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예전에 메이플 스토리 같은 게임을 하면 어떤 퀘스트를 해서 얻어지는 보상물품이 나중에 중요한 퀘스트 할 때 혹은 장비 업그레이드할 때 재료로 쓰이곤 하던데, 인생도 비슷한 듯하다.

모든 것은 Conneting dot, 이라고 하니 잘 쌓아두면 언젠가 쓸모가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것은 잘 모르겠으나 기회는 준비된 자의 것이라는 말은 진실인 것 같다. 이제 막 걸음마 떼는 주린이인 나도 내 인생 코인만큼은 장기 투자하여 존버(존중하며 버티기) 해보려고 한다.

그러니 오늘도 툭툭, 털고 일어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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