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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로운 Feb 22. 2021

1인 가구의 삶에 대하여

제가 가장이라서요, 제가 있지 않으면 가정이 무너져요.

20대, 이번 생 처음으로 가장이 되었다.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려고 늦잠을 자는데 뜬금없이 어디선가 우지끈하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행거가 무너져 있었다.


'그래, 요 며칠 흔들흔들 불안하다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됐구나.'


걸려 있던 옷을 툭툭 털어 안락의자로 옮겨놓고 겨우겨우 정리를 시작했다. 한 철 한 철 옷 정리가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고 집에 있는 걸 죄다 걸어놓다 보니 원목 봉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진 듯했다.

 

 부서진 행거가 꼭 나 같았다. 여러 가지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결국 퍼져버린 것이 아닌지. 가뜩이나 몸 상태도 안 좋아서 힘이 없었는데 그동안 쌓여온 스트레스가 터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는 어쩔 수 없음이 나를 움직였다. 작은 방에 비해 짐은 왜 이렇게 많은지, 쌓아놓은 옷 더미에 청소에 빨래에 설거지 등등 할 일들을 돌아보면서 한숨이 푹푹 나왔다. 귀찮다고 미루고만 있기엔 내가 가장인 이 집은 내가 관리해주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선, 가만히 있어도 구석에 뽀얗게 쌓이는 먼지와 자동으로 깨끗해지지 않는 옷들을 정리하고, 다 끝나고 나면 영어공부와 운동 같은 자기 계발도 해야 된단다. 좀 쉬려고 하면 시간이 훌쩍 지나 내일 출근을 위한 취침시간이 되기 마련이었다. 다람쥐 쳇바퀴돌듯 비슷한 일상이지만 매일매일 정리해주지 않으면 집안일은 어디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쌓였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혼자 사는 건 매우 매우 편하지만 그 편함의 대가는 꽤나 컸다.  이럴 때마다 그냥 본가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집이 있고 가정이 있고 매일 깨끗한 수건이 있고 깨끗한 방이 있고 잘 차려진 밥을 먹고. 평범하다고 생각해 온 세상이었는데 막상 내 얘기가 되니 매일매일 루틴을 지키고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음을 느낀다.


자취의 장점은 엄마가 없다는 거고 단점 또한 엄마가 없다는 거다. 이런 일을 몇십 년간 매일 같이 했을 우리 엄마만 생각하면 앞으로의 나의 미래 같아서 더더욱 막막함을 참을 길이 없었다. 아,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뭔 가정을 꾸리는지..! 역시 평범하게 살기가 제일 힘들다.


요새 친구들과 가장 많이 하는 얘기는 '재테크를 통한 내 집 마련', '운동과 바디 프로필', '사랑과 일 그 어딘가'다. 회사에서도 모든 얘기는 대부분 이 3가지 안에서 끝난다. 나도 재테크 유튜브 몇 개를 구독해놓고 필라테스를 연장했다. 주말부터는 제2의 직업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뉴스에서 대기업 정리해고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친구 중 일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벌써 집에 가고 싶냐는 말을 들었다. 어렵게 노력하여 들어온 회사지만 이 마저도 평생 직업이 아니다.

  

월급 오래 받고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살겠냐고 묻거든 혼자 살겠다고 대답하려고 한다. 사람은 둘이 살면 화나고 혼자 살면 외롭다지만 '빡치는 거보다야 외로운 게 제 명에 낫다고 생각해서'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인류애가 많지 않은(그렇다고 주장하는) 나로서는 나만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 잦은 빈도로 혼자서 고요하게 있을 공간이 절실했다. 집이 작을수록 답답함을 느끼는 건 당연지사기에, 현재 분위기로 보아 아마도 당분간 큰 집에 살지 못할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동거인이 생기는 건 더더욱 힘들 것 같다.


 나 하나 건사하며 혼자 살기도 벅찬데 둘이 잘 살 자신이 없다. 잘 도와주는 남편을 만나면 된다지만 나보다 세상을 좀 더 산 언니들과 이모들의 말에 의하면 '그런 남자는 유니콘'이라고 했다. 내가 유니콘이 아닌데 유니콘을 만날 수 있을런지... 이 또한 당분간 힘들 것 같다.


 1인 가구의 증가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나 또한 그 중 하나이니 말 다 했다.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선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1인 가구의 가장이었고, 가장의 무게는 이런 것이었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다만 현재를 열심히 보낼 뿐이다. 내일 뛰지 않기 위해, 도태되지 않고 평범하게 살기 위해. 그 과정이 왜 어렵냐들 하고 요즘 애들은 의욕이 없어서 그렇다는 분들을 꽤 만나지만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 진짜 어려웠다. 


상황이 이렇다고 불평만 한들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건 힘든 것이다. 덮어놓고 채찍만 하면 사람은 지쳐버린다. 당근이 필요한 이유가 그런 게 아닐까.


 정리를 다 끝내 놓을 때쯤 엄마한테서 전화가 와 있었다. 맛있는 거 해놨으니 주말에 종종 집에 오라는 연락이었다. 엄마는 이런 삶을 어떻게 유지해서 살았는지, 어떻게 또 그 와중에 맛있는 걸 하는 기력이 생기는지. 새삼 대단하고 슬펐다. 언젠가 나도 엄마처럼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 날이 오겠지. 다만 되도록이면 덜 힘들게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만큼 나이가 먹었는데도

아직 더 어른이 돼야 된다는 건 언제나 이상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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