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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열전 ② - 여아

이웃집 빙허각(덕주) - 채은하, 네가 오니 좋구나(달래) - 유영소

by 노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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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동화는 지난번에 이어 여아 캐릭터에 관련 두 편의 동화이다.

최근 출간된 채은하 작가의 [이웃집 빙허각]과 유영소 작가의 [네가 오니 좋구나!]이다.

두 편 모두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쉽지 않았을 시대의 여성이야기를 그렸다.





먼저 채은하 작가의 [이웃집 빙허각]은 전작인 [루호]를 정말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 역시 기대가 컸던 책이다.

조선의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 씨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한글로 쓴 백과사전인 [규합총서]는 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책이라고 한다. 나는 이 동화를 통해 알게 되어 이번에 읽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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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문장력이 좋고 작품이 탄탄해 믿고 보는 작가다.

장면 묘사가 탁월해 책을 읽고 있는 지금 조선 영조 시대에 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팔십 척의 배를 한 줄로 늘어 세우고 그 위에 널빤지를 얹어 지은 다리인데, 그 위에 홍살문도 세우고 배에는 오색 깃발을 달아 아주 장관이었다고 했다. p22
은행나무가 가지를 뻗친 흙담 아래에는 구기자가 무성하고, 반대편 담에는 안채로 통하는 사잇문이 나 있었다. 오래 묵은 집인지 기와는 색이 바랬지만, 잘 닦은 마루는 반질거렸다. p37


이 동화에서는 덕주라는 여아 인물과 빙허각 할머니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할머니, 윤보, 덕주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혼인해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따르는 것이 여자의 도리였던 그 시대에 덕주는 서체에 관심을 갖는다.

할머니는 덕주를 눈여겨보고 말을 한다.


꿈꾸지 말라는 책을 봐도 마음은 자라니, 참으로 곤란한 노릇이지.
p27


덕주는 어머니의 면포를 들고 아버지와 함께 살림을 배울 만한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할머니를 만나게 된 덕주는 놀란다.

아버지는 현명한 부인이라고 칭찬하고 덕주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할머니 집에서 일을 돕기로 한다.

집에서 여인들이 옷감을 짜는 일을 길쌈이라고 한다. 아주머니들이 모인 길쌈 자리에서 듣는 이야기들은 덕주에게 큰 자산이 된다.

누구든 책을 읽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않느냐는 할머니의 말에 덕주는 치맛자락을 움켜쥔다.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서, 먹고사느라 바쁜 사람들은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쓴 게 이상하지 않나요? 그 진짜 글자라는 걸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p80


한문을 공부해야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시절, 언문으로 책을 쓴다는 것은 편지 쓰는 것과 같은 것으로 치부했다. 이에 할머니는 귀한 지식을 담는 글자이기 때문에 한문을 공부해야 한다고 하며 언문으로 글을 쓰면 여인이기 때문에 언문으로 썼다고 가벼이 여길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한글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올라왔고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우리는 원서로 작품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선조들이 한글의 보급에 힘써줬기 때문에 지켜지고 보존되었던 것 아닐까?


언문도 글이고, 글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니 말이다.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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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가 책을 쓸 수 있었던 이면에는 어머니의 힘도 크다.

자신은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살림을 살지만 딸이 글을 쓰는 것을 막지 않는다.

뜻을 가진 아이를 지켜주는 것도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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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저 강물 때문에 그런가 봐요. 멀리까지 뻗은 강을 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이 따라 흘러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그중의 절반은 여인일 텐데. 정말 그 많은 여인이 이리 똑같이 사나. 정말 모두가 고분고분시키는 대로 사나 궁금해져요. p116


덕주의 말을 되짚어보면서 나는 어떠한가 생각했다. 세상의 절반은 여자일 텐데 그중 하나인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글을 쓰려고 하는 마음만큼은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덕주도, 빙허각 할머니의 그 마음으로 책을 썼을 것이다.

미꾸라지처럼 살아가겠다는 덕주의 말이 요즘 세상 살아가기에도 잘 맞는 말이다. 진흙 속에 있다가 유유히 헤엄쳐 나갈 힘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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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동화는 최근작 [박하네 분짜]로 2024 한국출판문화상 후보에 언급됐던 유영소 작가의 [네가 오니 좋구나!]라는 동화다.



기사전문 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0510460002815



이 동화 역시 현대가 아닌 1907년 한성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달래라는 여자 아이가 등장하여 엄마를 기억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공부를 하고 싶어 한성에 올라왔지만 남자아이를 원하는 터라 도로 고향으로 내려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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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잘못 배달된 아이'였다. 배달이라니.

아이의 인권이 바닥인 시절, 여자아이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달래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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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달래는 한약방 '신온당'을 운영하는 할아버지를 도와주면서 이 집에서 머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몸져누웠던 부인이 다시 달래를 돌려보내려고 하자 달래는 더 열심히 심부름을 하며 약방집 아이가 된다.

이 동화 역시 장면묘사가 탁월하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은 한성에 와 있다.


전봇대들이 기다란 전선을 매달고 늘어선 한성이 벌써 정겨웠다. 한길에 좌판을 벌인 점포마다 잔뜩 쌓아 올린 물건들, 그 사이로 소가 끄는 수레와 인력거와 자전거가 부딪힐 듯 스쳐가는 모습이 아슬아슬했다.
학생복을 입은 언니 오빠들, 모자를 쓴 신여성과 제복을 입은 일본 군병들도 숱했다. p27


달래는 한성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여학당에 가기 위해서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던 그 시절, 달래는 어떻게 공부를 하게 될까?

한약방 할아버지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제중원에 가 책을 가져오라고 하는 규호아저씨를 만나는 달래는 의아하다. 동의를 배우는 자가 양의에게 책을 빌린다는 게 놀랍다.

제중원에 심부름은 간 달래는 그곳에서 작은 외인 샘을 만난다.

이 둘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심부름을 하러 가다 달래는 료코라는 소녀도 만나지만 일본사람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


한약방 아주머니가 달래에게 노래를 불러보라 해 부르자 눈물을 흘린다.

먼저 떠난 딸이 생각났던 것이다.


해거름 놀빛이 마당으로 내려앉고 봄을 품은 잎샘 바람이 터앝을 돌아 나가는 동안, 두 사람은 우뚝 멈춰 있었다. 눈치 없는 나비 한 마리가 이리저리 나부댔다. 팔랑이는 날개마다 까만 얼룩이 묻은 천덕꾸러기 호랑나비였다. p50


옥이네로 쫓겨갔던 달래는 다시 아주머니에게 이끌려 신온당으로 돌아온다.

아궁이 불을 지피며 아주머니와 달래는 쏟아지는 눈물을 닦는다.

달래를 본 할아버지가 한마디 한다.


네가 오니 좋구나.


죽은 딸과 겹쳐 보여 내쫓을 수밖에 없었던 아주머니는 달래가 나가고 난 후 더 시름 앓았다.

다시 만난 아주머니와 달래는 달래 얼굴을 깨끗이 씻겼다.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려나 할 때 일본군이 우리나라 군인에게 총을 겨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에게도 발포한다. 분노가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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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는 여학당에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한성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읽는 내내 마음 졸이며 읽었다.

역사 속에서 여성은 강인했다.

그 강인함이 지금의 사회를 이루는 데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동화 속에서 또 다른 역사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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