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어린이] 황현호 보내기 - 김다노, 눈이 차오르는 시간 - 박서현
[창비어린이] 겨울호를 받았다.
이번 글은 이 계간지에 실린 두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우연히도 둘 다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였다.
둘 다 동화로 당선되었는데 김다노작가는 2017년, 박서현작가는 2024년에 당선되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김다노작가는 신춘문예 당선을 통해 등단하고 작품을 시작했다면 박서현작가는 2019년에 5.18 문학상 동화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그 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청소년소설부문을 받았고 202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되었다.
먼저 김다노 작가의 <황현호 보내기>는 가족들과 떨어져 할머니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황현우의 이야기다. 일을 하는 엄마를 대신에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현우에게 친구가 생긴다.
고추 방앗간 임 씨 아저씨에게 받은 강아지 메리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
메리를 보낸 고추 방앗간 임 씨 아저씨도 미처 몰랐다며 미안해했지만 나는 좋았다. 메리가 새끼를 낳아 심심할 틈이 없었다. 새끼들은 종일 꼬무락거리고 안아 달라 낑낑거리고 똥오줌을 쌌다. p73
메리가 힘들 거라며 새끼를 보내자고 하는 할머니 말에 현우는 깜짝 놀란다.
보내고 싶지 않지만 할머니에게 자신도 힘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별 말을 못 한다.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참 슬펐다.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되면 어김없이 성숙하게 변해버리는 아이의 마음이 짠했다.
모두 입양을 보내고 남은 막내는 보내고 싶지 않은 현우.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운다.
말로 하고 나니 슬픔이 더 짙어졌다. 베개가 흠뻑 젖도록 울고 또 울었다. 몸 안에 이렇게 많은 물이 있었다는 신기할 정도였다. p79
결국 시장에 가서 막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기로 한다.
친구 정이와 함께 시장에 가서 오천 원을 받으라는 할머니 말을 어기고 '0'을 하나 더 붙여 오만 원에 팔려고 한다.
메리를 건네준 임 씨 아저씨가 막내를 사가고 현우는 아저씨를 따라 막내를 보살펴줄 다음 주인을 만나러 간다.
제목에 나왔듯이 이 막내 강아지의 이름이 '황현호'다.
현우와 현호는 누구를 찾아갈까?
바로 임 씨 아저씨의 어머니네 집이었다.
그곳에서 현호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늘 황현호를 품에 안고 우유를 먹였다. 사료도 꼭 접시에 담아 먹게 했다.
그런데 지금 황현호는 혀로 맨바닥을 삭삭 핥고 있다.
곱게 키운 게 다 소용없어졌다. p88
나는 이 부분이 작가의 재치가 드러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다 잃은 듯 우는 아이가 자신이 키운 강아지의 정신없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는 모습을 상상하니 귀여우면서도 웃음이 났다.
이 동화에서 가슴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황현호를 안아 올렸다. 작은 몸이 뜨끈뜨끈했다.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섞여 들렸다.
갑자기 나도 황현호도 어딘가에 폭 숨겨질 만큼 작아진 것 같았다.
해가 눈을 찔러 찔끔 눈물이 났다.
우리는 서로를 안고 벼랑 위에서 바다를 보고 또 봤다. p89
이렇게 현호와 둘 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사건이 생긴다.
어떤 사건인지는 책을 통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다음은 박서현작가의 <눈이 차오르는 시간>이라는 청소년 소설이다.
처음 읽다가 단순히 청소년기 아이의 형에 대한 미움을 그린 일반적인 소설일까 생각했으나 '돼지 가면'이 등장하는 순간 판타지로 변했다.
독특한 소설이었다. 동화 같지만 어두운 소설.
형과 등산을 하게 되는 '나'는 형이 못 마땅하다. 나를 버린 형이 밉다.
그런 형이 나에게 겨울산행을 제안했다. 아무런 대화 없이 올라가는 형제.
이 둘에게는 아픔이 있다. 이혼가정의 흔한 레퍼토리에서 좀 더 깊이 어두운 심연이 보인다.
임신중독증으로 우울증을 앓은 엄마를 보내고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 소설은 겨울 산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읽다 보면 나 자신이 산 중턱에 앉아 눈이 덮인 산을 바라보고 있는 생각이 들고 몸에 소름이 돋는 착각이 들 정도다.
멀어지는 뽀드득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울컥 차오른 마음이 밖으로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무작정 몸을 틀어서 왔던 길을 내려갔다. 묵직한 눈송이가 바람과 함께 옆으로 휘날렸다. p122
둘에게 앙금이 남아있지만 쉽게 풀지 못한다.
산행을 하는 동안 말없이 오르고, 그런 모습에 또 화가 나기를 반복하다 나는 홀로 내려가려 한다.
등산을 해보면 알겠지만 내려간다고 생각해도 내리막길이 아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산길을 내려가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처음에는 내려가면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세 갈래 길 중 오르막만 계속되는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으니 당연히 길이 나와야 했다. 어쩌면 이미 내려온 게 아닐까. p122
'나'는 과연 무사히 내려갈 수 있을까?
미끄러지면서 장갑 한 짝과 모자도 잃어버린다.
하얀 보름달이 선명하게 하늘에서 빛날 때 내 앞에 '돼지 가면' 그가 나타났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홀로 눈이 덮인 산에 남겨져 길도 모른 채 주위를 둘러봤을 때 돼지 가면을 쓴 남자가 서 있다.
나라면 그 자리에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 나는 잠이 든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된다.
결정 모양은 하늘에서 구름을 뚫고 떨어지는 순간부터 계속 변하는데 떨어지는 동안은 맨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 어딘가 내려앉았을 때야 비로소 어떤 돌기와 가시를 가진 모양인지 알 수 있다. 세상에 같은 모양의 눈 결정은 없다. p132
이 소설은 무겁고 어둡다.
학대당한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가슴이 아프다.
누군가에게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면 그래도 살아갈만할 것이다.
이 아이에게 그런 사람이 돼지 가면을 쓴 남자인지, 형인지 모르겠다.
누구인지 상관없다.
아이에게 누군가 곁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모아둔 책이 있다. 매년 나오는데 거기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정말 참신하고 독특한 작품이 있는 반면, 꼭 발표를 해야 하는 신춘문예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뽑은 듯한 작품도 있다.
문학이라는 것이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읽혀서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좋은 작품은 나처럼 깊이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감동과 재미를 준다.
이제 신춘문예 접수기간도 거의 끝나간다.
내년이면 발표가 날 것이다.
누군가는 기쁨의 눈물을, 누군가는 아쉬움의 한숨을 표하고 다시 글을 쓸 것이다.
새로운 해가 모두에게 뜻깊은 한 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