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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이불 전시 감상 5가지 키워드

by 와이아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불-시작》(2021) 전시가 작가의 초기 활동 10년의 여정을 짚었다면, 이번 리움미술관 전시 《이불: 1998년 이후》는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불 작업의 큰 흐름을 조망한다.


1756687735089_F-Website-Desktop_M.jpg 전시 포스터 (출처: 리움미술관)


전시명 : 《이불: 1998년 이후》

전시 기간 : 2025.09.04.(목) ~ 2026.01.04.(일)

전시 장소 : 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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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지식을 알고 봐야 더 좋은 전시이기에, 5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와이아트에서 꼽은 키워드는 소프트 조각, 신체, 나의 거대서사, 미미크리, 평면 작업이다.




이불 작가 누구?


이불(李昢, 1964-)은 지난 40여년 동안 퍼포먼스, 조각, 설치, 평면을 아우르는 실험적 작업을 통해 국제미술계에서 널리 인정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1964년 강원도 영월에서 출생한 그는 좌익 정치 운동가로 활동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어머니가 가내수공업 등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회고한다. 그의 초기 작업은 페미니즘으로 해석되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정체성과 후기식민주의 등의 담론을 다루며 사회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인간 존재를 탐구한다.


_dsf8495.png Lee Bul. Photo: Eva Herzog (출처: Thaddaeus Ropac)


1987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이불은 당시 도제식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그는 전통적인 방법의 조각 수업에 대해 “새로운 것이나 남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할 수 없는, 가능성이 닫힌 정설이자 죽은 언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돌과 스틸(steel)로 만들어진 구조물만이 ‘조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불은 기존의 조각 재료가 체제의 권위를 드러내고 남성주의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보면서 자신의 내면을 분출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를 찾으려 애썼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소프트 조각’ 작업으로 이어진다.




키워드 1. 소프트 조각


‘소프트 조각’은 미국의 조각가인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의 <부드러운 타자기>(1963)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래 딱딱한 사물이 부드러운 소재로 표현되면 낯선 느낌을 전달하게 되는데, 이불의 경우에는 올덴버그에서 더 나아가 ‘입을 수 있는’ 소프트 조각을 제작한 것이다.


클래스 올덴버그, <부드러운 타자기(Soft Typewriter)>, 1963.


이불은 조각을 통해 생물 유기체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가 선택한 섬유와 고무는 육체(flash)의 느낌을 표현하기에 걸맞은 소재였다. 섬유는 그 어떤 재료보다 부드럽고 평면부터 입체까지 다양한 조형이 가능하고, 고무는 제조 과정에서 유연성과 탄력성을 얻을 수 있어 조각을 입은 채 퍼포먼스를 할 때 활동성을 보장해 주었다. 이불은 ‘소프트 조각’을 통해 회화와 조각, 공예라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게 된다.


20230728_090902.jpg 이불, <무제(갈망 레드>, 1988/2011, <무제(갈망 블랙)>, 1998/2011, <몬스터: 핑크>, 1998/2011.


이불이 처음 ‘소프트 조각’을 선보인 작업은 1988년 <갈망(Craving)>이라는 제목의 초기 퍼포먼스에서였다. 이때의 소프트 조각은 옷처럼 입을 수도 있고, 벗어두면 조각 작품이 되는 형태였다. 그는 신체의 여러 부위와 기관, 내장, 촉수 등이 섞인 듯한 형태의 옷에 솜을 넣고 부풀려 소프트 조각을 만들고, 장흥 벌판과 미술관, 갤러리 등에서 퍼포먼스를 벌인다.


article00_large-98.jpg 이불,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1990.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1990년에는 이 소프트 조각을 입고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나리타공항을 거쳐 도쿄 시내를 배회하는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라는 거리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불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만 예술을 접할 수 있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일상에서도 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불의 ‘소프트 조각’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작업을 시작한 초기부터 자신의 ‘신체’를 작품의 매체로 선택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특히 여성의 신체에 초점을 맞추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을 주로 선보였다.




키워드 2. 신체


이불의 작품을 읽는 두 번째 키워드로 ‘신체’를 선정한 이유는 작가가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신체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는 작업 초기에 한 인터뷰에서 ‘몸’을 소재로 할 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잘 드러난다고 언급하면서 “몸은 모든 사회, 역사, 문명과 문화의 사이트로서 발언하기 가장 좋은 대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불은 1990년대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주 언급되곤 하는데, 9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등장하며 감성, 성, 일상, 몸 등의 이슈가 부각된 시기이다. 이전까지는 ‘정신’과 ‘신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정신’과 비교해 ‘신체’는 열등하고 불안정하며 불순한 대상으로 취급받았지만, 근대주의적 인식론이 무너지면서 ‘신체’가 강하게 재인식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 이불은 여성의 신체를 형상화한 조각과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 신체의 한계에 초점을 맞추고,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억압과 관습을 고발했다.


image.jpeg 《이불-시작》(2021) 전시 전경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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