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미학자 우현 고유섭(高裕燮)
오늘은 우리 고유의 시각으로 한국의 미(美)를 탐구한 우현 고유섭(1905~1944)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고유섭은 한국에서 전문적인 미학 교육을 이수한 최초의 한국인이자, 일제강점기라는 가혹한 시대 속에서도 우리 미술의 정체성과 가치를 지켜내려 했던 학자이다.
『고유섭 평전』을 쓴 이원규 작가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책을 시작합니다.
우현 고유섭은 빼앗긴 조국의 미술사를 개척하라고 하늘이 점지해 내려보낸 듯한 비범한 인물이었다.
이 문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유섭이 남긴 글들은 일제의 역사 왜곡과 식민지 학계의 시각에 맞서 우리 스스로의 눈으로 본 문화와 미술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시도였다.
고유섭은 한국 미술사의 토대를 세우는 과정에서 한국 미술만의 고유한 미학을 설명하기 위해 ‘구수한 큰맛’과 같은 표현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한 수사나 미감의 묘사가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된 한국인의 생활 감각과 심미안을 응축한 말이었다.
고유섭은 ‘구수한 큰맛’ 외에도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비균제성’, ‘무관심성’, ‘담아’, ‘담소’, ‘질박’ 등의 용어로 한국의 미를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용어들은 모두 한국 미술이 지닌 미적 특징을 포착하기 위한 그의 독창적인 언어였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미술 비평의 차원을 넘어, 한국인의 미적 정체성을 복원하고 세계 속에서 고유한 예술 언어를 확립하려는 문화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글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우리가 보는 방식’과 ‘우리가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기준’에 대해 되묻게 한다.
우현 고유섭은 1905년 2월 2일 인천시 용동에서 태어났다. 우현의 조부는 개항 이후 인천으로 이주하여 상업에 종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아버지는 관립외국어학교 출신으로 1904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 제일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으나, 대학 진학은 하지 않은 채 인천에서 미두업에 종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현은 유년기에 서당 의성사숙에서 공부했으며, 열 살이 되던 해에 인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열네 살에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3·1운동이 시작되자 당시 15살이었던 우현도 만세시위에 가담해 구금되었다가 사흘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보성고보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우현은 경성제대 예과(문과)에 입학했으며, 본과에서는 1927년 법문학부 철학과(미학 및 미술사 전공)를 선택했다. 1930년 경성제대를 졸업하면서 경성제대 미학역구실의 조수로 취임한 후, 조선미술사 서술을 필생의 목표로 설정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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