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감상을 감상할 때 이미지를 먼저 보는 경우가 많지만, 자연스레 ‘제목’에 눈이 가곤 한다. 제목을 봐야 작품이 좀더 잘 이해되는 느낌인데, <무제>라고 붙어 있으면 왠지 작은 실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작품에 ‘제목’이 부여된 것은 모더니즘 미술의 시작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작품을 지칭하는 용어는 있었지만, 모더니즘 이전 시대에는 작품 제목에 대한 필요성이나 그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은 모더니즘 시기에 예술가들이 어떻게 작품에 제목을 붙였는지 살펴보려 한다. 「초기 모더니즘의 전략적 제목 짓기」라는 논문을 참고하였으며, 터너, 모네, 휘슬러, 칸딘스키, 몬드리안이 어떻게 제목을 붙였는지 고찰하는 재미있는 논문이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처럼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존재의 본질과 의미를 탐색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 구절을 현대미술의 제목에도 적용해볼 수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 미술에서 화가들이 ‘제목’을 붙이기 시작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한다. 모더니즘 미술가들은 전통적인 미술 규범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실험을 진행해 왔는데, 이 과정에서 작품에 표현되어 시각적으로 드러난 것과 미술가의 본래적 창작 동기 사이에 인식적 공백이 발생한다.
미술가들은 이 ‘틈’을 메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품에 제목을 붙였다. 제목은 단순한 이름을 넘어, 미술가의 의도와 작품의 해석을 전달하는 중요한 메신저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미술 작품에서도 ‘명칭’은 있었다. 가령 “예수를 그린 그림”, “포도 그림”과 같이 묘사된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명하는 방식으로 이름 지어졌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태동과 함께 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제목’의 필요성이 야기되었다. 더 이상 ‘예수’, ‘포도’ 같은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지 않기 때문에 작품에 시각적으로 드러난 것과 전달하고자 하는 본래 내용 사이에 불일치가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목 짓기는 ‘추상미술’의 등장과도 큰 연관성을 지닌다. 추상적인 표현 방식과 대상성의 해체는 제목에 대한 감상자의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는, 이러한 현상의 결과로 새로운 방식의 전략적 제목 짓기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럼 제목 짓기의 초창기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빛과 색채에 관한 혁신적인 탐구를 보여준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는 ‘제목’ 측면에 있어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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