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p가 뭐길래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갔다. 새롭게 옮겨 간 출산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데, 아기에게 보여야 할 뇌 구조물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급하게 대학 병원 의뢰서를 받았다. C.S.P(Cavum Septum Pellucidum)라고 아기 뇌량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물인데 이게 없으면 뇌 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전에 다니던 병원에서 정밀 초음파를 봤을 때 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던 터였다. 몸에 별다른 이상도 없었다. 병원에 가면 잘하고 있다고 의사 선생님에게 박수를 받기도 해서 걱정이라고는 없었는데 갑자기 아기에게 뇌 구조물이 없다니. 담당 선생님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건지 인터넷은 찾아보지 말고, 하던 운동도 계속 하고, 밥도 잘 챙겨 먹으면서 지내다가 대학병원은 더블 체크할 겸 다녀오라고 했다.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웃으면서 인사하고 나왔다.
병원 일정을 마치고 집에 오면서 도대체 C.S.P라는 게 뭔지, 무슨 기능을 하고 있으며, 없이 태어나면 어떻게 되는 건지 찾아봤다. 실제로 이 구조물이 없는 경우는 아주 드문 케이스였고, 작아서 잘 안 보이는 경우도 많고, 그러다 보니 상급 병원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태아 시절에 이 구조물이 없다 해도, 태어난 후에 사라지는 부분이기도 하고, 다른 기형이 없다면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도 아니라고 했다.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좀 놓였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에 회의적인 사람도 많지만, 때로는 이 정보가 소중한 지푸라기 한 줌이 되기도 한다. 간신히 그 한 줌의 지푸라기를 쥐고 우물에서 나올 수 있었다.
사실 인터넷에서 아기에게 이 구조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선택 유산을 한 다른 엄마의 글을 읽었을 땐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글을 읽고 마음을 다잡았나 보다. 최악의 경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건지에 대해 생각했다. 남편과 내가 간절히 바라는 건 아기가 무탈한 것이겠지만, 혹시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리에게 찾아온 아기의 손을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이후에 탈이 난다면, 그건 우리 부부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겠지 싶었다. 마음의 방향을 정하니 무거웠던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
그러다가 문득 21주차 때 본 정밀 초음파 영상이 생각났다. 요즘 병원에서는 어플을 통해 초음파 영상 기록을 부부에게 공유하고 있는데, 왠지 그 영상에는 C.S.P가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정밀 초음파 땐 분명 이상이 있다는 소견을 듣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영상에는 아기가 꼬물거리는 귀여운 모습도 있지만, 아기 무게부터 배 둘레, 허벅지 길이, 뇌의 직경 같은 정보들이 모두 구체적인 수치로 기록되어 있다.
20분짜리 영상을 천천히 돌렸다. 아기의 우주가, 나의 자궁 속이 어둡게 비쳤다. 손가락 5개, 발가락 5개가 보이고, 양쪽 귀, 그리고 아기의 심장을 확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뇌가 보였다. 아기의 머리 직경, 머리 둘레와 함께 맨 아래 C.S.P 수치 4.29mm가 떴다. 알아본 바로는 C.S.P 정상 범위는 3.8~7.2mm였다. 눈을 꿈뻑이며 다시 봤다. 그래, 아기는 괜찮다. 큰 병원은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더 체크한다는 생각으로 다녀오면 된다.
갑자기 잡힌 대학병원 일정에 남편은 같이 갈 수 없었고, 마침 엄마와 점심을 먹기로 했던 날이라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다. 병원이 집 근처라 엄마랑 오랜만에 집에서 삼삼한 가지덮밥을 만들어 먹고 슬슬 병원으로 출발했다. 엄마는 걱정이 돼서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강원도로 귀농한 엄마는 지금 산속에서 살고 있는데, 내 임신 소식을 들은 뒤부터는 텃밭에 나타나는 뱀도 함부로 죽일 수 없었다고 했다. 황금 구렁이 태몽을 꾼 딸 때문에 뱀과 동거를 하게 된 엄마였다.
예약하고 갔음에도 한참을 대기해서 정밀 초음파를 봤다. 의사 선생님 두 분은 말도 없이 아기를 살폈고, 곧 아기는 별 탈 없다는 간단명료한 말이 돌아왔다. 가서 출산 잘하라는 쿨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한마디와 함께였다. 곁에서 초조하게 보고 있던 엄마는 의사 선생님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했고, 나는 어쩐지 담담했던 것 같다. 엄마의 기쁨 섞인 목소리에 비해 나는 초음파를 보기 전이나 후나 큰 변화가 없었다. 진료실을 나오면서 괜히 엄마에게 엄마의 초조함이 날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수납 창구에 갈 때 엄마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눈물이 났다. 주차 등록 때문에 차 번호를 물어보는 수납 창구 직원에게 목이 잠겨 단번에 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괜찮다고 비로소 안심이 되었을 때 그제야 눈물이 나는 걸까. 누구는 처음 의사 소견을 듣자마자 엉엉 울면서 진료실을 나왔다는데, 나는 지난 며칠을 괜찮다고 자기 세뇌만 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 헤맸다. 괜찮다고 하면서도 실은 괜찮지 않았나 보다. 아기가 정말로 괜찮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야 내가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집에 돌아와 퇴근하는 남편에게 오랜만에 아이스크림을 한 통 사다 달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딸기랑 치즈케이크가 범벅인 아이스크림. 축 처진 속에 달달한 걸 넣어주면 마음이 좀 나아진다. 반기는 내게 남편은 아이스크림을 건네고 곧장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남편의 얼굴을 보고,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서 ‘정말로 괜찮은 거구나’하고 또 한 번 안심했다.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뜨는데 아기가 괜찮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래도 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보다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이 놓였을 때 몸이 반응하는 사람인가 보다.
임신 중기의 마지막 날은 나가서 실컷 춤추고 들어오자고 마음 먹었었는데, 춤추러 가지는 못했다. 집에서 남편하고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봄땅이 무탈해라’를 주문처럼 외우던 일주일이었다. 이제 정말 임신 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