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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Aug 14. 2023

눈 깜짝할 사이에 임신 중기

24주차

벌써 임신 24주차. 아기를 만나려면 약 100일 정도가 남았다. 초반에는 하루하루가 더디게 흘렀는데, 16주 지나자마자 거의 모든 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탱고 추러 가도 향수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리지도 않고, 일도 이전의 2/3만큼은 유지하고 있다. 입맛이 조금 변한 상태 그대로인 것 말고는 몸도 가뿐하다. 중기 들어서자마자 코로나에 걸려서 좀 쉬긴 했지만, 19주차 때부터는 이전에 하던 운동인 아쉬탕가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임신하고 컨디션을 원 상태로 돌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운동을 다시 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나트랑에 여름휴가 겸 태교 여행(실제로 아기를 위한 여행인지는 긴가민가하다. 모처럼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오기는 했다)을 갔을 때 리조트 요가 선생님은 내게 ‘머리 서기’ 같은 건 절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니는 요가원에서는 선생님이 잡아 주시기도 하면서 임신 전처럼 운동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 다들 임신-출산을 요가와 함께 하셨던 분들이라 믿고 따르고 있다. 임신은 병이 아니라는 말을 한 번씩 되새기기도 하고, 나의 신체 능력에 대해서도 최대한 신뢰하려고 하고 있다. 너무 많은 걸 조심하다 보면 어쩐지 내 몸에 대한 신뢰도,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용기도 급격하게 떨어지는 듯하다. 덕분에 생길 듯했던 요통도 완전히 가셨다.


다행인 건 나는 살이 좀 안 쪄도 아기 몸무게는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고(심지어 조금 큰 편이다), 뱃속 아이의 태동도 강력하다는 거다. 16주차에 태동을 처음 느꼈을 때에는 정말 물고기 꼬리가 배 안에 스치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아기가 크게 움직이면 허리까지 덜컹거리는 것 같다. 아기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나, 남편이 옆에서 수다를 떨 때, 맛있는 걸 먹은 후에 마치 신난 것처럼 꼼지락댄다. 아기의 궁전이라 ‘자궁’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라던데, 그 조그만 궁전에서 실컷 즐기며 잘 지내는 것 같아 고맙고 기쁘다. 한 주 정도 몸도 마음도 지쳤던 시기에는 태동도 잠잠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기에게 호르몬으로 고스란히 전달될 수도 있겠다 싶어 미안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일부러라도 즐겁고 행복한 경험을 많이 하려고 한다.


이번에 임신성 당뇨 검사를 하고 나면, 출산 병원으로 전원을 할 예정이다. 아마 이제부터는 출산 교육이나 정기 검진을 이유로 2주에 한 번씩은 병원에 가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는 일처리도 빠르고, 가까운 집 근처 큰 병원으로 다녔는데, 출산 병원은 의사 선생님, 조산사, 비의료인 출산 도우미인 둘라 쌤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임신 전부터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알아보고 있던 터라 가능하다면, 남편과 함께 출산을 준비하고, 진통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이 방법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물론 사전에 식단부터 운동, 출산 공부까지 모두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한 뒤 몸 상태까지 받쳐줘야 성공할 수 있다니 우리 부부에겐 일종의 챌린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우리의 손이 닿아 만들 수 있었던, 인사동에서 우리만의 작은 결혼식을 준비했을 때처럼 하나씩 차근차근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정 중에 실수가 있더라도 우리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믿기로 하고 말이다. 한 명의 팀원이 늘어난 상황에서의 팀플레이가 어쩐지 기대도 된다.


봄땅이가 5g일 때 제발 다음번 검진에서 심장이 잘 뛰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때가 며칠 전 같은데 시간이 금세 흘러 무게가 700g 가까이 되었다. 이제는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 느낌, 명암까지 느낄 수 있다고 하니 감사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나를 덮치기도 하고, 평소에 좋아하던 커피를 한 잔만 마셔도 배탈이 나버리는 걸 보면서 “뱃속의 이 쪼꼬미는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걸까” 싶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면 남편은 웃으면서 한 15년만 지나 보라고, 쪼꼬미라는 말이 무색하게 엄마보다 더 커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기들이 크는 속도는 어른의 시계와는 참 다르다. 내가 무심히 보낸 지난 몇 개월 동안, 아기는 그 사이 손도, 발도 만들고, 음악도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시작이건만 벌써부터 아이와 참 짧은 시간을 보내겠구나 싶다. 고작 한 15년일까? 의식하지도 못하고 보낸 지난 임신 몇 개월처럼 어느 순간 아기는 태어날 것이고, 어느 순간 나보다 훌쩍 큰 모습으로 곁에 서있지 않을까 하고 문득 겁이 나기도 한다. 아기가 우리에게 찾아와 준 만큼 아이의 인생을 아름다운 시간과 색으로 잘 채워주는 것이 한동안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가 아닐까 싶다. 우선 코앞에 닥친 임당 검사부터 무사히 통과하고, 열심히 출산 공부를 해야지 싶다. 초록이 가득한 카페에 나와 나는 글을 쓰고, 남편은 앞에 앉아 <출산 동반자 가이드>를 읽는 이 일요일 아침이 참 새삼스럽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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