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유화 그림이 완성되었다. 항상 그림을 그릴 때마다 완성은 할 수 있을까 싶은데 미완성인 듯한 그림이 나름대로 슬쩍 결말을 낸다. 그만 그리고 싶으면 그게 끝이다.
유튜브에서는 색칠할 때 캔버스가 보이지 않도록 촘촘하게 색칠하라고 하던데 그림을 그리다 보면 대충 붓이 가벼운 터치만 하는 경우가 많다.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서 그럴까 대충 훑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물감이 막지 못한 하얀 캔버스가 군데군데 보이기도 한다. 행여나 강사님께 한 소리 들을까 싶어 ‘모네도 그랬는데.’ 하면서 모네 핑계를 대본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감탄하는 그림 중 하나가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풍경화가인 모네의 “붓꽃”이다. 모네가 1914년에서 1917년 사이에 그린 붓꽃인데 지베르니에 있는 그의 정원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그릴 당시 백내장으로 시력이 온전하지 않아 캔버스는 칠하지 않은 하얀 여백이 군데군데 있었다. 이 그림이 완성인지 미완성인지 아직도 미스터리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끌렸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열린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 걸린 모네의 그림을 직접 보면서 ‘저런 그림 하나만 가졌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캔버스를 꼭 다 메꾸고 다 칠해버려야 그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빨리 그림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도 꼼꼼치 못한 색칠에 한몫을 하는 것 같았다. 색깔 따라 붓을 구별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번거로워졌다. 어느 순간 난 내 손가락에 물감을 짜서 칠하고 있었다. 한순간 직업을 잃은 난감한 붓이 머리털에 물감을 묻힌 채 뼈만 남은 미라처럼 멀뚱멀뚱 쳐다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유화가 손에 묻으면 물티슈로 닦고 중간에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하면서 깔끔쟁이처럼 굴었는데 말이다. 설마 손으로 물감을 칠했다고 강사님께 핀잔을 들을까 싶어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그랬는데.’ 하면서 핑곗거리를 준비했다.
메이크업할 때 브러시가 좋으면 장비빨처럼 화장이 잘 된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자신의 손가락이 편해진다. 유튜브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영상을 보면 최고의 도구가 손가락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림도 손가락으로 그린들 안 될 일이 있을까? 싶었다. 미끄덩한 물감을 손에 묻히고 그리는 느낌도 재미있었다. 나는 이제 유화 그리기 1살짜리니까 말이다. 유아기 때 미술 놀이는 손에 물감을 묻히고 벽이고 옷이고 뭐고 온천지 묻히고 놀면서 즐긴다. 깔끔하게 구는 게 오히려 비정상인 세계다.
이러니 나는 아직 아기고 왕 왕초보니까 너무 편하고 좋다. 세상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받아들여 준다. 관대하게 맘을 열어준다. 그 여유로움 속에서 혼자 소심히 미치고 날뛰어 보는 것이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 그저 고맙고 똥만 싸도 칭찬받는 것처럼 나는 유화 아기로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림 똥만 싸도 강사님과 회원분들이 칭찬해 주신다. 손으로 칠하든, 발로 그리든 그저 기죽지만 말라고 한다.
만약 세상을 살다가 어느 순간 기가 죽어지낸다면 다시 초보 아기가 되어 기 살려주고 칭찬받는 곳에서 쑥쑥 커나가길 바란다. 뭘 해도 잘했다고 웃어주시는 할머니의 체온 같은 칭찬이 너무 달게 느껴질 것이다.